한국일보

[여성의 창] 전진영 | 함박눈이 가져다준 추억

2011-03-02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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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를 맞아 겸사겸사 휴가를 내어 시애틀 집에 왔는데 엊저녁부터 펑펑 쏟아진 함박눈이 온 동네를 하얀 눈으로 소복하게 품어 버렸다. 아침에 부시시 일어나 밤새 소복하게 쌓인 눈을 보니 오랫만에 한국의 겨울이 떠오른다.

잠에서 덜깬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았던 창문 밖의 눈덮힌 놀이터와 그 뒤로 보이던 뿌연 우리학교 운동장. 코끝이 빨갛게 얼어붙는 추운 겨울이었지만 눈이 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겨울이 좋았었다. 동네 친구들을 총동원해서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도 하며 추운줄 모르고 뛰어 다녔던 그 시절.

기대하지 못했던 뜻밖의 선물인 오늘의 눈덮힌 아침. 이불속에서 비몽사몽 실눈을 떴을때 창밖에 펑펑 쏟아지는 눈을보며, 이게 한국인가 … 싶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처럼 창밖을 신기한듯 들뜬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어릴적 한국에서 캘리포니아로 이사왔을때 겨울에 눈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했다. 조금만 운전하면 레이크 타호의 아름다운 설경을 볼 수 있고 여행중에도 쉽게 눈을 접할수는 있지만 밤새 조용히 쌓인 눈을 맞이하는 아침의 그 새하얀 느낌에는 비교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어릴적 눈속에서 즐거워 뛰어놀던 그때가 아득히 그립다. 하지만 이처럼 따뜻한 이불을 박차고 밖으로 뛰어나가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고싶은 마음은…털끝 만큼도 없으니…. 포근하고 따뜻한 이불속에 꼼짝않고 파묻혀서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왜 어른들은 눈이 오면 함께 뛰어나가 놀지 않나…했었는데, 이제는 그 마음, 백번 이해 하고도 남는다. 이젠 나도 눈싸움 보다는 따뜻한 벽난로 옆에서 구운 고구마를 먹으며 음악을 듣는것이 더욱 좋으니까. 눈오는 거리를 걸으며 작은 상점들을 기웃거리고, 카페에 앉아 코코아를 마시는것이 더욱 좋으니까.

미국이던 한국이던 하늘에서 내리는 같은 눈인데, 또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나인데 눈을 보며 느끼고, 하고싶은 것들이 변한것이 당연 하면서도 신기하다. 그러나, 비록 눈속에 파묻혀 친구들과 뛰어 놀기에 여념없던 아이의 모습은 아니지만, 또한 연 날리며 눈썰매 타고 바둑이가 뛰어노는 전형적인 그림책속의 겨울놀이 풍경은 아닐지라도 (어릴적에도 뛰어노는 바둑이는 없었다…) 그 들뜨고 신나는 느낌은 여전하다. 게다가 눈덮힌 아침을 맞이하는 설레이는 이 마음도 한결같으니 결국, 사실은 딱히 변한것은 없는 셈인가. 그때나 지금이나 눈은 설레임과 행복을 가져다 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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