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강정은 | 5번 도로

2011-02-28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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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5번 도로를 좋아한다. 누구든 캘리포니아에 살다 보면 안 다닐 수가 없는 도로일 것이다.

얼마 전에 샌디에고에 사는 동생네에 다녀왔다. 가끔 보고 싶고 생각날 때면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끌고 5번 도로를 탄다. 내려갈 때는 귀여운 조카들과 가족들을 볼 생각에 부푼 마음과 기대로 지루하긴하지만 그래도 참을 만하다. 게다가 L.A.에 들러서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점을 들릴 생각으로 기대가 한층 더하다. 그리고 그 후의 계획한 모든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의 5번 도로는 내게는 참 특별한 또 하나의 여행이 된다.

언제부터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굳이 비행기 보다 차를 타고 긴 운전을 선택하는 이유도 돌아오는 길의 5번 도로 때문이 큰 이유다. 처음 시작은 안 그랬을 것이다. 또 처음부터 그러려고 계획해 본 것도 아니다. 한 두 번 할 수없이 운전을 하고 다니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된 것 같다. L.A.를 벗어나 산을 넘을 때 까지는 그래도 즐거웠던 시간의 여운이 남아서 아직도 마음이 가라앉질 않는다. 그렇게 가다가 Fairfield를 지나면서 부터가 시작이다. 그 동안 참아왔던 지루함은 어떠한 방안이라도 없으면 도저히 견디기 힘든 시간이다. 소떼들의 냄새가 지루함을 깨워주지 않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게는 그건 별로 동의 하고 싶지 않은 소재다. 단지 그 곳을 빨리 지나가기 위해 과속만 하게 되는 곳이다. 그러다 다시 한결 같은 긴 도로와 옆 창문으로 보이는 가끔은 노을진 광야를 또 가끔은 암흑속에 광야와 예쁜 별들을 보면서 저절로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아줌마 치매(?)로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냥 옛날에 한번은 이 길을 지날 때 어떤 일로 다녀왔고 또 한 번은 이 지점을 지날 때 어떤 느낌이었고, 울기도 했었고, 웃기도 했으며, 남편과 싸운 일도 있었고, 휴게소를 놓쳐 아이가 소변을 참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었고, 졸음을 쫒으려 듣고 있던 음악중에 예전에 미쳐 몰랐던 좋은 노래를 듣고는 그 후로 나의 애창곡이 된 때도 있었고…

평소에 바쁜 생활로 정리 되지 못했던 생각들을 많이 정리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이가 껄끄러워진 사람과의 관계도 차근차근 생각하고 정리하다 보면 원인과 답을 얻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너무나 힘들어 절망에 빠져있을 때 노을이 진 유명한 그림과 같은 풍경이 나를 보며 ‘인생이 다 그런 거야’ 라며 위로를 준 적도 있었다. 그렇게 나의 슬픔과 즐거움을 공유하는 도로, 한마디로 나를 철 들게 하는 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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