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의 향기] 손종렬 / 지금 행복하세요?

2011-01-1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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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구근을 화분에다 옮겨 심으려고 작년에 피었다 진 칼라릴리 화분의 흙을 엎었다. 그 흙 속에서 작고 구근들이 하얀 실뿌리들을 내리며 새 움을 틔우고 있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봄을 준비하는 희망의 노래는 불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지거나 죽은 것이 아닌데 왜 나는 그것들이 없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까? 오늘도 자연은 내게 아주 작은 것에서 귀한 깨달음을 준다.

행복이라는 것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어딘가에서 내게로 다가오며 손짓
하고 있을 지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오늘 하루 동안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삶이 행복하고 건강하며 윤택한 삶이기를 원한다. 누구나 행복을
꿈꾸지만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지는 않은 것 같다.


재물과 명예, 어느 만큼 지녀야 만족할 수 있을까? 많이 가진다고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적게 가지고도 그 안에서 자족(自足)을 느낀다면 행복할 수 있고, 현재의 주어진 상황에 대해 감사해하며 족함을 아는 지족(知足)이야말로 행복의 첫째 조건이다. 남보다 많이 가지거나 앞서 간다고 해서 행복의 척도가 될 수는 없듯이 비록 조금 뒤쳐져서 간다고 해도 목표가 확실히 보이면 그것 또한 행복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위하여!> 라는 건배사 대신에 <당.신.멋.져.> 하기도 한다는 것을 며칠 전 어느 생일 모임에 가서 들었다. 당당하고, 신나고, 멋지게, 그러나 져주며 살자! 는 말의 앞 글자만을 따서 만든 구호인데 특히나 맨 뒤의 <져주며 살자!>라는 말이 내 가슴에 감동으로 와 닿았다.

매번 이기고자만 하면 그 삶은 각박한 것이 된다. 조금은 져주고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보아주며, 다른 사람과의 비교 없이 칭찬해주고 인정해주는 것이
서로가 행복한 삶으로 가는 윈윈(Win-Win)의 길이 아닐까

행복은 거창하게 오지 않는다. 작은 순간 순간들이 이어져서 행복을 만든다.
행복하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행복이 파랑새처럼 날아갈
까봐 조바심을 내기도 하고 막상 불행이 닥쳐서야 그 때 가서 아, 내가 지금껏 행복했었구나 느끼기도 한다.

수선화 구근을 화분에 심고 물을 많이 주었더니 움이 트기 시작하였다. 가끔은 몇 시간씩 햇볕도 쏘여주고 바람도 맞게 하였다가 다시 들여놓고 오며 가며
얼마나 자랐나 본다. 며칠 새 긴 잎들 사이로 꽃 대궁이 올라오기 시작하였다.

얼마 안 있으면 하얀 은쟁반에 금 접시를 얹은듯한 꽃들이 옹기종기 다투어
피어날 것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는 또 마냥 행복해 할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새소리를 들으며, 건강히 하루를 시작함에 감사와 행복을
느낀다. 겨울 비를 맞으며 뿌리들에 열심히 물을 올리고 있는 나무들에게서
그 요동치는 생명력을 느낌과 매일 되풀이 되는 일상 속의 작은 것에서,
그리고 자족과 지족을 배우는 데에서부터 행복은 움튼다.

예기치 않게 찾아온 불행 속에서도 긍정적인 의미를 찾아 행복해 하는 사람이
있고, 그 불행에 억눌려 남은 시간을 소모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어떤 눈높이
에서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행복의 관점이 달라진다.

새해 벽두에 암환자들이 모여 제주도 한라산을 등정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들이야말로 시한부 생을 선고 받고 절망의 길에 선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주저 앉지 않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와 위로가 되어주며
희망과 행복을 부여잡기로 하였다. 그런 마음과 행동들이 병을 고치기도 하고
고통 가운에서도 힘이 되어주는 서로를 껴안는 모습에서 나도 그들과 함께
행복한 눈물을 흘렸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내 곁에 나를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보아주는 그 누군가
있을 때, 내가 힘들고 지칠 때 내 손을 잡아줄 때. 그 어깨에 기대게 하여줄 때,
더불어 함께 하는 사이가 바로 행복의 간격이다

지금 행복하세요?
모든 사람이 ‘네 행복합니다’ 라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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