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 칼럼 / 사주 카페
2011-01-04 (화) 12:00:00
지난 9월에 5년만에 귀국 했을때 였다. 참석 했던 대회도 마치고 그동안 필요로 했던 자료도 수집할겸 서울에 몇일 있었다. 강북에 위치한 호텔에 머물며근처 분식집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고 하루 종일 60여년전에 살던 곳을 찾어다니며 사진도 찍고 메모도 했다. 여러번 서울 방문때 내가 살던곳의 자료를 수집해보려고 시도 했으나 같이간 일행도 있고 자동차로 다니니 수월 하지 않었다. 이번에 하루 4시간 5시간씩 걸어다니며 기억에만 있던 서울거리를 보게 된것이 여간 다행 스럽지 않었다. 걸어 다니니 눈에 자주 뜨이는 곳이 사주 카페라는 곳이다. 시내 중심가 특히 인사동에 여러군데 있다. 녹차도 즐기며 쉬어 가라고 선전도 한다. 몇번 지나치다 궁금 하기도 하여 마음먹고 한곳에 가니 추석 연휴라 문을 닫는다는 표지가 붙어있었다. 자세히 안내판을 보니 사주보는 곳이 였다.
우리 자랄때 시장 바닥에 멍석을 펴놓고 장보는 아낙네들 에게 인생상담도 하던 그런 곳이 였다. 어려운 시대를살던 우리모두에게 마음의 위로를 주기도 한 생활의 일부 였다. 돈이넉넉한 사람들은 용하다는 곳을 찾어자녀들의 혼사 나 사업의 성패를 상담도 하는가 하면 정치인들은 그들의 정치 생명도 점치려 자주 찾어 다녔다. 어떤 곳은 자가용 차들이 길을 메우리 만큼 잘되는 곳도 있었다. 살기가 어려울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세계적으로 경제대국에 접어든 나라에서 아직도 그런곳이 성행하는 것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이름은 달러젔지만 50년대의 향수를 느끼게도 했다.
장래를 알고 싶은 마음이 인지상정 일테고 양의 동서가 다르지 않은가보다. 미국도시후미진 곳에 포춘 텔러나 패를 갖고 점을 봐주는 곳이 여러군데있다. 그저 그런곳이있는가 보다 했는데 근래 경제사정이 악화 되며 이의 이용도가 많어젔다는 특집 신문 기사가 났다. 살기 힘들때 마음을 호소 하고 의지 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일 것이다. 이민자 뿐만 아니고 우리 모두가 참 어렵게 살어온 지난 몇년이 였다. 집차압은 다반사 이고 실직을 하거나 사업실패등 끊임 업는 일들이 우리를 괴롭게 했다.
그 기사에 의하면 한 백인 여성은 경제가 어려워지자 직장에서 해고를 당하고 얼마후에 남편한데 이혼을 당했는가 하면 중병에 걸리기도 했다. 미국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머피 법칙”(Murphy’s Law) 에 걸렸는가 보다. 즉 않되려면 한꺼번에 불행이 닥친다는 그런 표현이다. 여러군데 도움을 청하다가 인터넷을 통하여 “점쟁이” 를 알게되고 그가 권유 하는 부적과 상품을 사용하니 신기하게도 직장을 다시찾고 건강도 회복 했다는 기사 였으며 그 이후 정기적으로 그로 부터상담을 받는다고 한다. 주위가 어려우니 장래를 점치는 사업이 성업중인가 보다. 더구나 우리에게 가까운 인터넷 매체가 예전에는 꺼리던 일도 쉽게 할수 있게 한다. 전에는 주위에 눈치가 보여 쉽게 갈수 없는 곳이 였다.
이런것이 남의일만은 아니다. 우리 동포 사회에도 용하게 점보는 사람이있어 정기적으로 그들을 찾어가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이런곳을 자주 찾는 사람중에 기독교 신자가 많다 하니 놀랍다. 사주를 본다는 자체의 잘잘못을 이야기 하자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샤마니즘에 익숙한 우리에게 쉽게 다가오는 현상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 오랫 동안 몸에밴 습관에 연유를 둔 고향을 찾는 그런 마음일 것이다. 다시 서울을 찾게 되면 지난번 가보지 못한 사주 카페에 가서 전통차도 즐기며 역사에게 내 인생 풀이도 듯고 싶다. 그리고 내가 전쟁때 동대문 시장바닥에서 공짜로 본 사주팔자 와 비교도 해야 겠다. 어려서는 고생을 하겠지만 커서는 잘되겠다는 그런 것을….. 그런데 당시에 그런 처지를 당한 사람이 나만은 아니였겠고 전쟁직후 어려운 상황에서 그 이외에는 다른말로 마음의 상처를 위로 할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주 팔자 보는 집이 어렵고 의지 할수 없는 사람 들에게 안식처가 되었을 것이고 지금도 그런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