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 최계영
2011-01-03 (월) 12:00:00
점심후 밖에 나와 허리를 펴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넓은 평야에 이웃집 둘 뿐이었다. 거실과 부엌겸 쓰는 집옆에 또 한 채의 집이 있는데 방이 두칸인 침실이었다. 화장실은 떨어져 있고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는데 아무 시설이 없는 공간이었다. 부엌앞 마당가에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는 공간엔 어디서 길어온 물인지 큰 통에 가득차 있었다. 그 옆에 할머니 혼자 돌볼 수 있는 고구마와 야채밭 외는 끝없이 보이는 평야다. 나는 무섭고 외로워 그런 곳에 못살 것 같다.
할머니한테 형제가 몇이냐 물었더니 언니가 옆에 있다고 했다. 그 옆에 언니가 사는 줄 알고 갔더니 모두 일 나가고 열 살짜리 머슴아이 혼자 있었다. 할머니 집으로 오는 중 바로 부엌 옆에 붉은 흙돌 몇 개와 야생풀로 덮여있는 쪽을 가리키며 언니는 여기 누워있다고 했다. 아무리 봐도 어떤 표적이 없다. 나는 또 한 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죽음과 삶의 별 구별이 없는 할머니의 순수한 자연철학이 문득 “우리는 일곱”이라는 워즈워스의 장시가 생각났다.
나는 대학 3, 4학년을 영어 부전공을 하면서 영시 암기를 즐겼다. 영시들 중에 특히 “우리는 일곱”이라는 장시를 좋아했다. 그 시의 내용은 한 소녀에게 형제가 몇이냐 물으니 일곱이라 했다. 둘은 콘웨이에 살고 둘은 바다에 갔고 둘은 교회 앞마당 옆 나무 밑에 누워있다고 했다. 그러면 다섯이 아니냐고 하니 그 소녀는 나는 매일 여기 와서 같이 놀고 뜨게도 하고 먹고 노래 부르며 같이 생활한다고 하며 계속 우리는 일곱이라고 했다. 할머니가 시속의 소녀같이 느껴지며 순수함이 나를 감동시켰다.
할머니 옆집은 언니의 아들 가족이었다. 그 집의 열 살짜리 머슴애가 책한 권을 들고와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그것은 영어 교과서였다. 짐바부웨이는 영국 식민지 이었기 때문에 영어가 표준어로 되어 있다. 그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을 만치 질문이 많았다. 자기는 영어와 수학을 좋아한다며 공부가 재미있다 했다. 학습열이 대단한 아이로 밝은 장래가 보이며 내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그날 쿠무샤에 온 하루만으로도 아프리카 여행에 보람을 느꼈다. 밭에서 금방 캔 황토가 주렁주렁 묻은 사랑의 고구마 한 자루를 받고 오면서 큰 부자가 된 것 같고 앞으로 남은 여행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