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박명혜

2010-12-29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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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에서 또 다른 시작을 꿈꾼다

몸도 마음도 바쁜 한 주였다. 모임이 다른 때보다 많기는 했지만, 그 이유보다는 이번 주가 지나면 한해가 끝난다는 심정적인 이유가 마음을 더 바쁘게 했을 것이다. 하루, 이틀 차이가 보통 땐 그리 큰 문제가 될 것도 없는데, 연말엔 하루하루가 다르다. 조바심까지 내가며, 따져보면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일들로 바쁜 한 주를 보냈다.

미루어 두었던 김장을 했다. 열 포기 남짓인데도 며칠을 부엌을 어지럽히며 김치를 담갔다. 다른 일과 겹쳐 맘처럼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땐 그때그때 담가 먹을 것을 하고 후회도 했지만, 해놓고 나니, 마음은 넉넉했다. 큰 일 사이사이엔 옷장에 걸려 있는 철 지난 옷들도 빨아 정리해 두고, 장식장 먼지도 털어내고, 화분에 마른 가지도 잘라내고, 영양제 섞어 물도 주었다. 전화 끊으며 자주 연락하자 했던 친구들, 하지만 그후 통화하지 못한 친구들과 전화도 했다. 나만 바쁜 연말이 아니니, 짧은 통화였지만 ,한해 끝에 서로 나눈 인사는 따뜻했다. 이렇게 며칠을 바쁘게 움직이고 나니 오늘은 빗소리도 들린다. 며칠을 두고 내린 비였는데 느끼지 못했다가 여유가 생기니 이제서야 유리창에 부딪히는 빗소리가 들린다.

산도 성큼 다가와 있었다. 밸리에 비가 내릴 동안 산 위엔 눈이 내렸나 보다. 산엔 하얗게 쌓인 눈이 꽤 아래까지 내려와 있다. 산은 일 년 내내 계속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이렇게 겨울이 되고, 눈이 덮히고 나서야 산이 있었음을 처음인 양 발견하곤 한다.


너무 많다 싶은 비가 며칠을 내리고, 가까이에 산이 보이고, 계절 끝 겨울이 왔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한해 끝에서 작년 이맘때를 떠올려 본다. 그때도 비가 내렸고, 눈때문에 산을 가까이서 느꼈던 것 같다. 또 이번주처럼 종종거리며 비슷한 일들을 했었던 것 같고, 다 하지 못한 일을 아쉬워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새해엔 달라지리라 굳은 각오도 했었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난 지금, 내 모습은 지난해와 많이 닮아 있다. 그렇다고 내 한해를 자책하고 싶지는 않다. 아쉬움과 미련이 또 새 계획을 만들 테니까 말이다.

이 비 역시 지금은 마지막 나뭇잎마저 모두 떨구어 버리지만, 또 몇 달 후엔 싱싱한 새싹을 돋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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