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조래현

2010-12-26 (일)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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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여행

여행이란 떠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준비 할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더구나 28년동안 꿈꾸던 여행이라 내 가슴은 기대감으로 벅차올랐다. 떠나기 2주전부터 설레이는 마음과 흥분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셀 그룹 멤버들과 1박2일 리트리트로 North Lake Tahoe를 다녀왔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이른 아침, 모닝커피를 마시는 내 손은 떨리고 마음은 벌써 행복했다. 한참을 달려가니 눈발이 보인다. 마치 발성을 하듯이, 소프라노 음역으로 환성을 지르다보니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렇게 행복하다니...내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온통 하얀 눈으로 덮였다. 하늘을 향해 쭈욱 곧게 뻗은 나무 가지마다 하얗게 옷을 입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노래를 불렀다. “주님이 지으신 세계...” 갑자기 나의 어린 시절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혹독하게 춥던 그 겨울 논 둑가에서 놀던 그날이 내 눈앞에 보였다. 구슬치기, 딱지치기, 얼음지치기, 썰매타기를 하며 열심히 놀았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동생과 동네 친구들과 눈을 맞으며 즐겁게 놀았다. 한 살 차이인 남동생은 내게 유일한 보조관 노릇을했다. 작은 누나를 지켜주고 함께 놀아주었다. 또 내게 친절하게 대해준 풀빵 아저씨, 꼬득꼬득 하고 바삭 바삭 입에서 녹는 풀빵을 먹었던 그 추억이 내 가슴에 남아있다.

삶에 묻혀서 지내다보니, 결혼 후에도 4 자녀들과 눈 구경 한번 못 갔다. 자녀교육과 교회생활에 바빠서 가족여행을 즐길 여유가 없었다. 이제는 자녀들과 함께 할 여유가 생겼으나, 지금은 그들이 바쁘다. 4자녀들에게 너무도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이번 여행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시간이 너무 소중했다. 우리의 셰프인 Mrs. 홍이 준비한 거나한 식사거리로 우린 행복하고 기쁨이 충만했다. 벽난로에 장작이 활활 타오르듯, 셀 식구들의 마음에도 사랑의 불꽃이, 감사의 불꽃이 올라온다. 하얗게 뒤덮인 세상에서 아이들과 어른들도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 눈싸움에 정신이 없다. 눈 속에서 뒹굴며 놀고 싶었다. 나이를 잊고 어린소녀처럼 웃고 싶은 날들을 너무 오래 기다렸다. 산천초목을 하얗게 덮어버린 눈 때문에 세상이 예쁘게 보였다. 낡은 것도, 더러운 것도, 약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덮어준 눈 때문에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사람까지도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왜 일까? 사랑하는 지체들의 수고와 배려 때문에 더 행복했던 여행. 사랑하는 마음으로 풍성했던 여행. 그 사랑이 녹지 말고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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