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하면 떠오르는 것은 ‘사랑, 자비, 포용, 인내, 참회’ 등의> 단어들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종교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갖가지의 전쟁과 민족간의 유혈분쟁, 테러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도 교차된다. 역사적으로 ‘종교’라는 이름으로 빚어져 온 일들이 그 종교를 세운 성자들의 본의와는 다르게 많은 부정적 기능을 해왔다는 것은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인간의 사고를 좀더 자유롭게 하고, 인간 사회에 유익을 주기 위해서 나온 처음 본의와는 다르게, 오히려 종교가 인간의 이성적, 합리적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집단 간의 갈등과 편견을 조작하는가 하면, 과도한 죄의식의 조장으로 삶의 희망보다는 비관을 갖도록 하기도 하였다. 또한 때로는 각 종교의 세력 확산이 목적이 되어 각종 갈등과 전쟁의 주요 원인이 되어 오기도 하였고, 가부장적 남성 중심의 문화권에서 발생된 종교들은 인간으로서의 근본적 평등의식을 여는 것이 아니라 구조화된 성차별을 더더욱 고착화 시키는데 일조를 해오게 되었다. 이 사회의 한 종교인으로서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면서 참회하는 마음으로 21세기의 참 종교의 모습을 그려본다.
첫째는 “나”를 드러내지 않는 삶이 참 종교의 모습이다. 내 종교의 진리만이 진리라고 하지 않고, 우리만이 선을 행한다고 하지 않고, 또한 내가 어떤 선행을 하고서도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더나아가서는 무한한 절대자 앞에서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서 “하느님, 저에게 가난을 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용기 있는 모습이다. 갈수록 세상의 과학문명은 발전되고, 이러한 문명의 이기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것, 더 편리한 것만을 찾게 하고 있다 . 이러한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되어 가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행복해 지는 것이 아니라 더해가는 욕심을 따라가면서 무엇인가 부족함에 허덕이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내 욕심을 내려놓도록 하는 것, 내가 옳다라는 아집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종교의 참 모습이 아닐까.
지금까지 종교는 성공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자주 사용되었다. 어쩌면 인간의 이기심에 종교가 함께 동참해 왔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 앞에서 ‘저에게 가난을 주소서. ‘하고 기도하는 것은 얼마나 용기 있는 기도 인가. 이러한 기도는 철저하게 진리를 인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21세기의 종교는 바로 이러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인류를 인도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적으로 성인이라 칭송되는 분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그 분들의 삶에는 사치와 군더더기가 없다는 것이다. 단순한 그대로, 소박한 그대로, 검소한 삶 그대로 아름다운 삶을 일구고 가신 분들이다. 이 분들은 사치가 무엇인지조차 모르지만,무소유의 가장 큰 부유함을 누리신 분들이다.
마지막으로,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절대자 앞서만 경건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지 내 생활에서 그러한 경건함과 경외심을 놓지 않도록 하는 종교이다. 식사를 하면서 농부의 땀을 기억하면서 감사를 올리고,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서 함께 살아가는 가족에게서 부처님과 하나님을 발견하여 진정한 공경의 마음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를 놓고서 온전하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가신 분처럼 그렇게 일하고 생활할 수 있을까. 내 안의 욕심들이 오롯하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헌신하신 분들의 아름다운 뜻과 만날 때마다 내
욕심들은 눈물이 되어서 주르르 볼을 타고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