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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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동굴들 신화와 불교역사 간직

2010-08-06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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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가 이형숙의 실크로드를 가다

▶ <9> 화염산과 천불동

투루판 시내에서 약 40km 동쪽으로 달리면 사막이 펼쳐지고 그리고는 갑자기 왼편에 마치 시뻘건 불이 훨훨 타고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 나온다. 길이가 100km, 넓이가 10km 인 이 산의 평균 높이는 약 500m 밖에 되지 않으니 중국에 있는 산으로서는 나지막한 산에 속 한다. 그러나 산에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볼 수 없었다. 바로 이곳이 그 유명한 소설 서유기(Journey to West)의 무대인 화염산이다.

작자 오승은이 쓴 중국의 유명한 소설로 원숭이 손오공, 돼지 저팔계, 그리고 사오정이 현장 법사와 함께 수많은 역경을 무릅쓰고 인도까지 가는 도중에 일어나는 사건들과 인도에 도착한 현장 법사가 그곳에서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깨우치고 많은 불경과 불상을 들고 이들과 함께 돌아오는 길에서의 에피소드를 쓴 여행기이다.

5,000만년 전에 지형의 변화로 생성되었다는 이 화염산은 이를 둘러싼 여러 가지 신화를 갖고 있다.


그중 위구르의 전설에 의하면 옛날 먼 옛날에 사람을 잡아먹는 용이 이 산속에 살고 있어 인간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용감한 청년 크라코자(Krarghoja)가 용을 죽이기 위해 산으로 들어갔다. 용을 만나고 격투 끝에 청년의 칼이 드디어 용의 목을 찌르자 이 용은 피를 흘리며 하늘로 올라갔는데 그때 흘린 피로 인해 이 산이 이리 붉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마치 불타는 듯 나지막한 사막산
이곳이 바로 서유기의 무대였던 곳
‘손오공 여의봉’에 온도계 설치 눈길


붉은 사암으로 형성된 이 산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비와 바람 등 자연현상으로 군데군데 골이 파있어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마치 불꽃이 이는 것처럼 보여 이름조차 화염산이라 한다.

이곳은 중국에서 가장 더운 곳이다. 여름에는 날계란이 몇 분 만에 삶은 계란이 될 만큼 뜨겁다고 한다.

그렇게 더운 이곳에도 사람들은 이 산자락의 계곡에 포도, 살구, 복숭아를 재배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봄이면 복사꽃, 살구꽃이 만발하여 붉은 화염산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고 한다.

원숭이 손오공이 부채로 화염산의 불을 꺼서 당나라의 고승 현장 법사가 이곳을 안전하게 지나 인도로 향할 수 있게 했다는 이곳은 중국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라 한다.

화염산 박물관 입구 양 벽에는 서유기에 나오는 줄거리를 양각으로 해서 전시해 놓았고, 안으로 들어가면 이곳에서 많이 재배하는 포도에 관한 설명이 그림과 함께 진열되어 있다. 아이러니컬하게 외국인들이 어떻게 천불동 동굴 벽에 그려진 벽화를 훔쳐 갔는지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 조각도 만들어져 있었다.
손오공이 들고 다니던 여의봉 모양으로 온도계를 만들어 놓아 이곳이 얼마나 더운지 사람들이 잘 볼 수 있게 세워 놓았다. 또한 서유기의 주인공들인 현장 법사, 원숭이 손오공, 돼지 저팔계, 하천의 괴물 사오정의 동상과 선녀 상을 뒤에 보이는 화염산 배경으로 세워 놓아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화염산 속 계곡에는 물이 흐르는 실개천도 있었다.
이 계곡에 동굴을 파고 벽화를 그려놓은 석굴들이 잘 보존되어 있음은 아마도 건조한 이곳 기후 때문일 것이다.

그 중 5-9세기께 번성했던 가오창 왕국(Gaochang Kingdom) 때 만들어진 그렇지만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다는 베제클리크 천불동(Bezklik)을 찾아갔다.

입장료로 인민폐 20위엔을 내고 들어간 이 천불동은 화염산 속 무토(Mutou) 계곡에 있는데, 이곳에서는 77개의 석굴이 발견되었으며 그 속에는 수많은 불교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오른쪽 낮은 계곡을 이용하여 굴을 파고 벽과 천장에 부처님 상을 그려 놓았고 그 아래 있는 계곡으로 내려가면 승려들이 기거하던 숙소와 야채밭과 포도밭들이 강 옆에 있다.

대부분의 석굴의 사각형의 방모양으로 만들었고 천정은 둥근 아취모양으로 만들었으며 천장을 비롯한 모든 벽에는 아름다운 색을 사용하여 불상을 그려 놓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불상의 얼굴 부분에 진흙을 발라 훼손시킨 벽화 또 칼로 그림이 있는 곳만 잘라 빈 벽만이 앙상하게 남겨져 있는 석굴이 제법 많았다.

그래서 화염산 박물관에 외국인이 벽화를 오려서 훔쳐가는 동상을 만들어 놓아 그를 보는 외국인들로 하여금 수치심이 우러나오게 해놓았나 보다.
어떤 벽화에 그려진 불상에는 금을 많이 사용하였다는데 금이 있던 자리만 베어간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곳도 있다.

이슬람이 번성하였던 당시에는 “사원 벽에 인물을 그리지 않는다”는 종교상의 이유로 벽화에 그려진 석가모니의 얼굴들을 다 지워버리는 수난도 당했다고 한다.

많은 동굴이 잠겨 있었고 단지 몇 개의 동굴만이 관광객들에게 입장을 허락하였다. 21번 동굴은 왕의 시주로 만들어진 동굴로 이 동굴 중에서 가장 크다고 하였고, 26번 동굴은 삼면 벽에서부터 천장에 그려져 있는 모든 불상의 얼굴을 다 긁어버려 얼굴 없이 몸만 있는 불상들로 빼곡하였다.
27번 동굴은 불상의 얼굴이 일부는 긁혀나가고 일부는 진흙으로 발라 훼손 시켰다.

문화재 관리국에서 진흙 바른 곳에 진흙을 벗겨 원상으로 복귀하려는 작업을 시도하여 비교해 보았는데 오히려 그대로 두는 게 좋다는 결정을 내려 지금은 작업을 중단한 상태라고 하였다.

천불동이라 함은 꼭 천개의 불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아주 많다”라는 뜻을 지녔으며 간혹 999의 불상에다 나의 불심을 합하여 천 불상을 될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아주 그럴 듯하다.

이곳에서도 낙타를 빌려 타고 화염산 꼭대기까지 올라가 산 위에서 그 주위 경치를 볼 수도 있다. 또 다른 쪽의 화염산 속 포도계곡(Valley of Grape)에서는 약 13종류의 포도가 생산되고 있으며 이는 주로 포도주와 건포도를 만드는데 사용한다. 사실 이들 위구르족은 거의가 모슬렘이므로 종교상의 이유로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포도주는 전부 다른 지방으로 팔려진다고 하였다.

포도주를 파는 곳조차 없으니 맛을 볼 수도 없었다. 아마 내가 대단한 애주가였다면 어떤 방법을 동원해 구해 한잔 마셔 보았겠지만…
“약심세스”란 위구르 말로 “안녕하세요”란 뜻이 있어 이 말 한마디만 배워서 누구를 만나던지 “약심세스”라고 인사를 해 본다.
가장 무더운 도시(the hottest city), 가장 메마른 도시(the driest city), 가장 낮은 도시(the lowest city), 그리고 가장 달콤한 도시(the sweetest city).
자연도 그리고 사람들도…. 이곳이 바로 투루판이다


손오공의 신화를 간직한 화염산에 위치한 천불동 계곡. 수많은 동굴들에는 불교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손오공의 여의봉을 본떠 만든 대형 온도계. 한 여름 이곳은 날계란도 금세익을 정도로 무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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