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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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요새… 파괴된 옛모습에 안타까움

2010-07-3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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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가 이형숙의 실크로드를 가다

▶ <8> 투르판의 교하 고성

몽고군 침입때 초토화 아직도 복원 못해
대사원 터전에선 번성했던 불교 흔적 엿봐
화려했을 왕궁, 지금은 바람에 흙먼지만…


투르판에는 두 개의 고성이 있는데 하나는 고창(Gaochang)이고, 다른 하나는 교하(Jiaohe)이다.

고창 고성은 지금은 많이 파괴되어 별로 남아있는 것이 없다 하여 우리는 교하 고성을 보기로 했다.


이 도시는 시내에서 약 15킬로미터 서쪽에 있었다.

교하 고성은 두 강이 흐르는 사이에 있는 53 에이커 대지에 터를 잡았다. 이 땅은 30미터나 되는 높은 절벽위에 있어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도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마치 서울의 여의도 같은데 그 여의도가 절벽 위에 있다고 가정하면 쉽게 이해가 가리라. 길이가 1,650미터, 넓이가 300 미터로 마치 갸름한 고구마 같은 모양으로 생긴 땅 덩어리다. 물론 절벽 위에 있으므로 다른 고성처럼 성벽을 세울 필요가 없었다.

차사(Chesi) 전국의 도읍지로 시작하여 당 나라에게 점령당할 동안 1,640년의 긴 역사를 가진 곳이다.

일명 이 고성을 ‘야르허트’(Yarkhoto)라고도 부르는데 ‘야르’는 위구르 말로 ‘절벽’이란 뜻을 가졌고 ‘허트’는 몽고말로 ‘도시’라는 뜻이니 ‘절벽도시’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이 고 도시를 들어가는 관문으로 남문과 동문 이렇게 두개의 성문이 있다.
남문은 지형이 낮아 쉽게 드나들 수 있는데 비해, 동문은 절벽으로 그 밑에 강이 흐르고 있어 이 두 곳만 잘 지키면 안전하다. 또 도시의 집들은 모두 지하로 땅을 파고 들어가서 방을 만들어 일종의 지하도시를 형성했다고 한다.
입장료 40위엔을 지불하고 들어가니 이곳을 보기 쉽게 설명해 놓은 도시의 안내도가 걸려 있었고, 왼쪽 전시관 속에는 이 교하성의 모델을 만들어 놓아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남문을 통하여 고성으로 올라갔다.

지하 이층으로 땅을 깊숙이 파서 방을 만들었다는 군인들과 관리들의 사무실은 복원 중이라 목을 길게 빼서 위에서만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남북을 가로 지르는 350미터나 되는 긴 그리 넓지 않은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평민이 사는 곳과 귀족이 사는 곳, 그리고 사원이 있는 곳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중앙통로 제일 끝에는 옛 모습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는 대사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서쪽은 귀족과 사원들이 동쪽은 평민들이 살던 집들이 보인다.

101개의 탑 중 유일하게 중앙에 한 개만 남아있는 파고다 삼림(Pagoda Forest)과 흔적만 남아있는 왕궁 터는 화려했던 그 시대를 말없이 대변해 주고 있다. 그리고 8.4미터 높이의 망루를 비롯하여 여러 개의 사원과 묘지 그리고 특히 유아들의 묘지가 따로 만들어져 있었다. 왜 아이들만 묻는 묘지를 따로 만들었는지 궁금증만 커졌다.

이곳에는 여자 수도승들만이 기거했던 사원도 있고, 그 사원 안에는 여자 수도승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우물도 따로 파 놓아 그 당시 불교가 얼마나 번창했는지를 보여 주었다.

절벽과 강으로 연결되는 동문은 군사 요새지로 사용되었다는데 지금은 말라서 물이 없지만 그 당시 유용하게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우물이 5개나 있었다. 보통 사원에는 한두 개 밖에 없는 우물이 이곳에는 5개나 있는데 그 5개가 모두 필요했을 만큼 군인의 수요가 많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을 해 본다.

그러나 이러한 난공불락의 성도 아이러니컬하게 몽고에 의해 침략 당해 훼손되었고 도륙당한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특히 몽고의 징기스칸(Ghingiskhan) 군대에게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대항하던 교하성은 그야말로 징기스칸 군들의 말굽으로 초토화 되어버렸고, 아직까지도 복원되지 못하여 언뜻 보기에는 베스비우스(Vesuvius) 화산의 폭발로 인하여 폐허가 되어버린 이탈리아의 폼페이(Pompeii)를 연상하게 하였다.

징기스칸의 군대는 항복을 하는 자는 살려주고 그곳을 통치할 사람도 그들 중에서 뽑지만, 만약 대항을 할 경우엔 젖먹이 어린이까지 남기지 않고 모두 죽여 흔적도 남기지 않는 무시무시하게 악명 높은 군대였다고 한다.

그러니 가는 곳마다 전승하여 아시아인으로서는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제국이 아니었던가?

강 주위로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포풀라 나무들, 지금도 예전에도 흘러가는 강물, 강 건너 멀리 언덕에 지워놓은 포도 건조장들.

지금은 교요한 정적만이 흐르고 이따금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발길만 부산할 뿐이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천혜의 요새였던 교하고성 앞에 세워진 안내판. 높이에서 그 규모를 짐작케 하지만, 난공불락으로 여겨졌던 이 성도 결국 징기스칸에게 무너졌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교하고성 왕궁. 세찬 바람과 시간의 흐름 속에 화려했던 모습은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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