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자존의 외교

2010-07-27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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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빌라이 칸, 원(元) 세조(世祖)는 몽골 제국의 5대 칸이다. 위대한 정복자였으나 유목민의 조야한 풍습에 길들여져 있던 칭기즈칸과 달리 쿠빌라이는 상당히 세련된 인물이자 왕성한 호기심의 소유자였다.

그런 쿠빌라이는 칭기즈칸부터 시작된 정복전쟁을 마무리하고 제국의 영토를 최대로 넓힌 영명한 군주로 꼽힌다. 이 쿠빌라이와 관련된 한 가지 에피소드로 이런 게 있다.

그가 중국 정벌 차 양양(襄陽)에 있을 때 멀리 고려에서 사절단이 왔다. 고려 왕실의 태자(나중의 원종)가 입조한 것이다.

쿠빌라이는 황망히 나아가 영접했다. 주변사람들이 놀랐다. 원에 입조해온 나라가 하나 둘이 아니고, 그들을 맞이할 때 쿠빌라이는 세계 제국의 황제로서 옥좌에 앉자 알현을 받았지 이처럼 겸손히 처신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이랬다고 한다. 몽골 제국을 상대로 수 십 년 항쟁해온 나라가 없었다. 고려가 유일하다. 그 고려의 태자가 마침내 입조하자 세계의 제왕은 ‘용감한 나라 고려’를 존중해 이처럼 파격의 예를 갖춘 것이다.

쿠빌라이는 끈질기게 항전한 고려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아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강국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그리고 쿠빌라이는 몽골이 이때까지 정복한 지역을 모두 자기 영토로 편입시켰던 것과 달리 실로 파격적인 강화조건을 수락한다.

몽골이 고려의 풍속을 고치도록 강요하지 않겠다는 ‘불개토풍(不改土風)’을 약속한 것이다. 고려의 존속을 보장한 것으로, 이를 ‘세조구제’(世祖舊制)라고 한다.

이 세조구제는 이후 양국 간 국가관계는 물론, 교류에도 큰 영향을 미쳐 원의 간섭으로 고려의 독립이 위협받을 때마다 이를 방어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한·중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한 한국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구설수에 올랐다. 윤장관은 오찬사에서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소개하며 양국 간의 우호증진을 다짐하는 덕담을 했다. 문제는 과공(過恭)의 표현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청의 건륭제를 ‘황제님’이라고 불렀다. 현재의 중국을 230년 전 건륭제 치세와 비유했다. 마치 중국이 세계 정치·경제의 중심에 있는 양. 또 박지원을 중국의 선진문명을 소개한 사대주의 인물로 묘사한 것이다.

그 과공이 우선 거슬린다. 천안함 사태로 한·중 관계가 결코 편안치 않은 상황인 만큼 하는 말이다. 거슬리는 게 또 있다. ‘열하일기’를, 실학자 박지원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것이다.

중국의 문물을 소개한 것은 맞다. 그러나 박지원이 열하일기를 통해 주로 강조한 것은 ‘주조선(主朝鮮)의식’이다. 달리 말해 민족주의다.

뭘 좀 제대로 알고, 당당히 강대국을 상대로 자존의 외교를 펼치는 장관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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