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 안희경 (번역작가)
2010-06-16 (수) 12:00:00
하이쿠 Haiku
취해서 자련다
패랭이꽃 피어난
바위에 누워
마츠오 바쇼의 하이쿠다.
이민생활 무심해서 그나마 꽁꽁 쟁여둔 오징어도 제때 먹지 못한다. 해 넘겨 마르다 못해 굳어 버린 한 쪽을 온 종일 물고 있어도 바다 내음이 그리울 뿐이다. 내게 있어 그 오징어가 하이쿠다. 잊고 있다 느닷없이 만나 또 며칠을 품게 되는 그리움이다.
하이쿠는 일본의 짧은 정형시다. 그리고 유행가 하이쿠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린 이가 17세기 마츠오 바쇼다. 하이쿠를 알게 된 건 민음사 세계시인선에 바쇼의 책이 나와서였다. 1998년, 스물 일곱 이었다.
미국 와서는 잊고 지냈다. 우연히 미국인 대학원생한테 고등학교에서 하이쿠를 배웠다는 말을 듣고 놀랐었다. 2년 전 일이다. 그러고 보니 미국 문인들 가운데는 하이쿠를 짓는 하이진이 많았다. 비트 문학의 선구자 알렌 긴스버그도 그랬다. 그리고, 다시 하이쿠를 보게 된 건 아이들 동화책에서다. 존 뮤스의 그림책을 좋아하는데,
에 있었다.
다시 만난 하이쿠에서 참 재미있는 발견을 했다. 계절에 대한 느낌이다. 전통 하이쿠에는 꼭 계절을 알리는 계어(季語)가 나온다. 위의 시에서는 여름을 알리는 패랭이꽃이었다. 8년 전, 미국에 처음 와 봄처럼 싱싱한 겨울과 흔한 동백을 보며 어리둥절했었다. 이제는 타국 생활이 익숙해 졌는지 바쇼의 한 줄 싯구에서 귀한 발견을 했다.
올들어 첫 참외
네쪽으로 쪼갤거나
통으로 자를거나
그리움 때문에 사게 되는 한국 참외를 보고 망설여 본 이가 나만은 아닐거다.
방랑에 병들어
꿈은 마른 들판을
헤매고 돈다
누런 동산이 황토가 아니라 마른 풀이라는 것을 알면서 켈리포니아 벨리의 마른 여름을 배워야 했다. 이 시의 마른 들판이 17세기 그 곳에서는 겨울이었지만 여기 새크라멘토에서는 이제 여름이라는 걸 재차 알게 해줬다. 세 줄짜리 시라도 있어 넉넉하다.
필자의 요청사항:여백을 살리기가 어려우면 하이쿠 한 줄 끝나고 빗금으로 구분 하셔도 됩니다. 다만 하이쿠 앞 뒤로 한 줄 여백을 남겨 주셨으면 합니다.
제 후진 글보다 시 한 줄 전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거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