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 입니까?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길이 참된 교육의 시작입니다
이 글은 한국의 공익광고문안이다. 아들아이 교육문제로 고민하는 나에게 위안과 조언을 겸하여 보내진 것이다. 이 문안을 작성한 분은 이상향에 살고 계시든가, 고등학생자녀가 없는 분이라 여겨진다. 아니면 자녀와의 대화의 필요성을 못느끼는 이미 자녀교육에 성공한 부모인 것이다.
학교에 상관없이 자녀를 잘 키울 수 있다고 자신하는 부모가 과연 얼마나 될까? 좋은 학군찾아 이사하는것은 부모인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부분을 학교가 담당해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자녀의 교육이 부모만의 과제인 사회는 없을 것이다. 자녀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격언이 있다. 맹자의 어머니는 자녀교육에 바람직한 마을을 찾아 세 번이나 이사하였다. 오늘날에는 교육의 전문화로 학교가 교육의 전담기관으로 자리잡았다 할 뿐이다.
모든 부모들은 광고문안에서처럼 멀리 보라, 함께 가라, 꿈을 꾸라 하고 자녀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부모 자신들도 무엇이 멀리 있는지, 진정한 꿈인지 알 수 없는 혼동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농경시대에는 세월의 흐름은 지식과 경험의 축척으로 이어졌기에 부모들은 자녀에게 앞날에 대해 조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식정보시대인 현재는 그러한 연륜의 보장책이 없는 것이다.
자녀교육의 문제점은 “하라” 의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가 없는데 있다. 내가 말하는 대화란 구체적 개관적 사항을 6 하 원칙에 따라 상호간의 선입관을 배제한 체 건설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그러한 우아하고 논리적 의사소통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다. 화가 나서 소리지르면서 하는 말도 상호간의 생각, 느낌, 의견이 전달되면 대화인 것이다. 집안에서 침묵은 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