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길을 떠나며
중국 산시성(Shaanxi)의 주도 시안(Xian)에서 시작하여 터키(Turkey)의 이스탄불(Istanbul)까지, 그리고 더 나아가 이집트를 비롯하여 유럽으로까지 연결되는 무역로. 남으로 파키스탄을 통해 인도까지 이어지는 장장 4,000마일에 이르는 이 실크로드는 고대 동 서양을 잇는 유일한 국제 무역통로였다. 기원 전 114년 한나라 때부터 시작돼 지난 2,000년 동안 수없이 많은 상인, 순례자, 선교사, 병사, 유목민들이 희로애락을 수놓고 다녔던 바로 그 길. 여인들이 즐겨하는 화려한 색상의 비단, 향수, 향료, 약재, 보석, 도자기, 유리 장식품들, 그리고 노예들이 이 길을 통해 공급됐다.
상인·순례자·유목민 애환 서린 곳
중간중간 오아시스 마을 수많은 유적
모래바람 속 사막 들어서 목숨 잃기도
자, 이제 중국 시안서 서쪽으로 출발
유럽의 호사가들의 기호에 걸맞는 중국의 비단이 이 길의 주된 품목이어서 이름마저도 ‘실크로드’라 부른다고 하지 않는가? 실제로는 이 이름이 1877년 독일의 지리학자 페디난드 본 리치토펜(Ferdinand von Richtofen)의 의해 명명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중국의 시안에서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물건을 나르던 대상은 그리 많지 않았고, 중간 중간에 있는 오아시스를 기점으로 그 곳 상인들에게 물건을 넘기고 또 그 곳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서 돌아오는 형식이었다. 그래서 오아시스 동네인 둔황(Dunhuang)이나 투르판(Turpan), 그리고 카시가(Kashigar)를 가보면 그 말이 쉽게 이해가 된다.
이 머나 먼 역정의 실크로드는 시안에서 란조우(Lanzhou), 둔황을 거쳐 카시가에 이르는 길을 ‘동 실크로드’(East Silk Road)라 부르고, 카시가에서 지금의 카자흐스탄(Kazakstan)을 경유해서 이란, 이라크를 거쳐 이즈탄불에 이르는 길을 ‘서 실크로드’(West Silk Road)라고 불렀다.
‘동 실크로드’를 가는 길은 사막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낙타가 중요한 교통수단이어서 그들을 카라반(caravan)이라 불렀고, ‘서 실크로드’는 높고 험준한 산악을 지나야 하는 지리적 요건으로 이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야크(yak)를 사용했다고 한다.
시안에서 떠난 대상들은 간수성(Gansu)의 란조우로 들어가서는 그때부터는 황하와 산기슭을 따라 만든 1,000킬로미터의 좁고도 험난한 긴 길(마치 복도 같다고 해서 이를 하서주랑(Hexi corridor)이라 불렀다)을 따라 둔황으로 들어온다.
둔황을 거친 실크로드는 다시 타클리마칸(Taklimakan) 사막을 두고 사막 북쪽에 있는 ‘천산북로’와 남쪽에 있는 ‘천산남로’, 그리고 타클리마칸 사막을 가로지르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한다고 한다. 또 많이 돌아가지만 우루무치(Urumqi)를 지나는 길도 이용됐단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길은 아주 위험하기 때문에 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별로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꼭 그 길을 가야만 했던 일부 상인들은 오아시스를 발견하지 못하거나, 거대한 모래바람(sand storm)으로 인해 변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한다.
타클리마칸(Taklamakan) 사막은 중앙아시아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래사막이다.
한반도의 7.5배가 되고 전 중국 영토의 6분의1이나 되는 어마어마하게 큰 중국 신강(Xinjiang)성 남쪽에 자리 잡은 타림 분지(Tarim Basin)에 있는 27만평방킬로미터 크기의 어마어마한 이 타글리마칸트 모래사막은 동서의 길이가 1,000킬로미터, 남북이 400킬로미터로 러시아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비람으로 인해 겨울은 무척 춥고 여름은 더우며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 매우 건조하다.
중국 전체 사막의 47%를 차지한다는 이 사막에 초속 300m로 불어대는 모래바람이 4개월 동안 불면 하늘은 온통 붉은 색으로 변해 버리고, 파란 오아시스 마을이 모래 산으로 둔갑되어 버리는 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다. 위구르(Uygur) 말로 ‘타클리마칸’이란 “들어가면 결코 다시 돌아 나올 수 없다”란 뜻이니 그야말로 걸어 들어가서 걸어 나오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아닌가?
이 메마르고 추운 사막이란 여건 때문인지 이곳에서는 심심치 않게 몇 천년된 미라가 발견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발견된 미라들의 상태는 아주 양호하여 연구에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1980년 이곳에서 발견된 미라 ‘롤란 뷰티’(Loulan Beauty)는 3,800년 전에 죽은 중국인이 아닌 서양인 미라라서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선지자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에 함께 살았던 이 여인이 어떻게 이곳 중국까지 왔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곱게 잠자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깊은 잠에서 깨어날 것만 같다는데 지금은 홍콩의 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사막을 지나야 하는 많은 상인들은 그들의 짐을 나르기 위해 낙타를 사용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육봉이 두개인 낙타가 이 오아시스 동네에는 많이 눈에 띄었다. 지금은 낙타도 팔자가 좋아져서 관광객들만 나르고 있지만 말이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이 길을 통해 온 수많은 진귀한 물건들은 동서양의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크로드하면 꼭 나오는 이름이 있는데 그가 바로 마르코 폴로(Marco Polo)이다.
이탈리아의 부유한 베니스 상인의 아들로서 중국(원 나라)에 와서 살며 보고 들은 진기하고 신기한 사실들을 적은 ‘동방견문록’을 쓴 탐험가이자 작가인 그는 아마도 서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실크로드를 지나간 사람이 아니었을까?
몇년 전 터키에 가서 조금은 서쪽 끝의 실크로드에 맛을 보았기에 이번에는 중국 쪽에서 시작되는 동 실크로드의 여행을 시작하려고 한다. 중간 지역은 지금 전쟁 중이라 위험하니 전쟁이 끝나고 안전해야 가 볼 수 있을 테니 양쪽 끝만이라도 보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첫 발을 떼었다.
중국 계림에 있는 한 여행사의 레티시아(Leticia)와 함께 오랫동안 계획하여 2009년 4월6일 새벽 0시20분 비행기로 나성을 출발, 서울을 경유해 4월7일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산시성(Shaanxi)의 주도 시안(Xian)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은 산시성의 시안을 시작으로 감숙성의 둔황, 신강성의 투르판, 우르무치, 그리고 카시가까지 중국 넓이의 약 4분의3을 다니게 되는 여행이다.
이탈리아의 로마, 이집트의 카이로, 그리스의 아테네와 함께 세계 4대 고도로 불리는 중국의 시안에 도착하면서 실크로드 여행은 시작됐다.
둔황의 명사산에 위치한 막고 동굴.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도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중국 역사의 주 무대였던 시안은 실크로드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었다. 성벽 위에서 바라본 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