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필산책 / 주평 (아동극작가)

2010-06-02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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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룻배를 기다리며

이 해도 어김없이, 석류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 집 울타리 석류나무 가지에 빨간 석류꽃이 피기 시작한다. 또 한해가 가고 또 한 해가 오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살아 간다는 것은 슬픈 꽃 한 송이 피우고 , 슬픈 열매 하나 맺고 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오.헨리의 유언처럼 어둠 속에서 집으로 돌아 가고 싶지 않아, 불을 더 밝히라고 소리 쳤듯이, 오늘도 나는 내 마지막 삶의 등잔불의 심지를 도꾸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지 모른다.

글 쓰는 동료 두 사람과의 점심 식탁! 음식상을 차려 주던 식당 여종업원이 나에게 던진 말! "연극 하시는 선생 맞지요? " 그렇다고 대답하자, "선생님의 연극 갑분이와 이분이, 참 재미있게 보았어요! " 라고 말한다. 그녀가 보았다는 연극이 바로 1990년에 공연한 이 지역에서는 최초인 극단 ‘금문교’의 창단공연 작품인 "맹진사댁 경사"란 걸 단박에 짐작이 갔다. 20년 전에 본 연극을 지금껏 머리 속에 담고 있는 그녀의 표정을 보면서 연극의 매력이 오래 간 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기도 했다. 그뿐아니다. 요즘 따라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이제 연극 안 하십니까? " "그 멋진 연기와 춤 다시 한번 보고 싶은데요! "라고 말 할 때는 내 몸 속에 잠재(潛在)해 있던 연극의 끼가 요동치는 걸 난 주채하지 못한다. 그리고 내 꿈의 태반이 연극 하는 꿈이라고 실토(實吐) 한다면, 프로이드의 심리학에서 내 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 식당 여종업원의 눈 가에 잔주름이 세류(細流)처럼 깔린거로 보아 그녀의 삶이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짐작케 하지만, 그래도 20년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내 같이 맹진사 댁 경사의 추억을 간직하고 사는 그녀의 일면과, 인사치래로 던진 말이든, 연극의 재미를 다시 한번 맛보고 싶어 나에게 연극얘기를 끄낸 그들의 연극에 대한 매력! 이 연극의 매력이 바로 내 인생의 진로를 바꿔 놓은 그것이 아니었던가?!. 그러기에 나는 글 쓰는 작업과 연극하는 행위 양면을 오가면서도 연극 쪽에 더 힘을 기우렸다고 할까, 재미를 부치고 살아 왔다는 게 솔직한 나의 고백인 것이다.

순간예술이자 공간예술 임과 동시에, 종합예술(綜合藝術)인 연극! 오늘 날 영상매체의 발달로 텔레비전을 통한 안방극장이 판을 치고 있고 또 이 안방극장이 한류(韓流)까지 불러 일으키고 있을뿐 아니라, 시각적이고 관능적(官能的)이라고 할 수있는 뮤지칼이 극장무대를 점유하고 있지만, 그래도 순수연극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음은, 바로 연극이 지니고 있는 매력 때문인가 싶다. 그래서 쎄익익스피어(영국)의 ‘헴렛’과 ‘오세로’ 그리고 ‘리어왕’이, 모리엘(프랑스)의 여학사(女學士)가, 맥심.골키(러시어)의 ‘시구창’이, 입센(노르웨이)의 ‘인형의 집’이 그리고 존.싱(아이랜드)의 ‘바다로 가는 기사’ 등 명작(名作)들이 전 세계에서 시대를 초월하여 널리 상연 되고 있다는 사실은 정통연극(正統演劇)이 지니는 매력과 영구성(永久性)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2004년 이후 막을 올리지 못한 연극의 막을 올리기 위해, 어린 아이가 무엇을 잡으려고 손을 휘젓듯 나부대 보지만, 꽁꽁 얼어 붙은 경제불황이 나의 바램을 풀어 주지 않는다. 이러한 나의 나부됨에 대해, 아무리 고령화 시대라고는 하지만, 한국의 전문극단에서도 80살을 넘긴 나이에 연출을 맡았던 연극인이 없는 마당에, 이 나이인 내가 연극판을 벌이려는 나의 행위에 대해 노망(老亡) 들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일을 고집하는 이유는 연극이 지니는 매력 때문만은 아니다. 1990년, 이 북가주 지역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이민연극! 그 중에서도 94년에 창단한 아동극단 ‘민들레’의 ‘콩쥐 팥쥐’ 10년 공연에 걸쳐, 하와이를 비롯한 미주지역에서의 수많은 공연과 한국 및 일본등 해외공연에서 관중들이 무대를 향해 우뢰 같이 쳐 주던 박수 소리가 아직도 내 귓전에 환청(幻聽)처럼 들려 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대에 섰던 200명이 넘는 그 어린 연기자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들이 내 눈에 선하게 남아있기 때문인 것이다. 게다가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타 지역과는 달리, 이민연극이 화려하게 꽃을 피웠던 그 전통이 내 대(代)에서 끊어 짐이 못내 아쉽기 때문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강언덕에 나와 앉아, 나룻배 오기를 기다리는 촌노(村老)처럼, 풀리지 않는 강바닥을 바라 보며, 김동환(金東煥)의 시, ‘강물이 풀리면’ 을 마음 속으로 읊어 보는 것이다.

/강물이 풀리면 배가 오겠지/ 배가 오며는 임도 타겠지/ 임은 안 타도 편지야 타겠지/ 오늘도 강가서 기다리다 가노라/ 임이 오시면 이 설움도 풀리겠지/ 동지 섣달에 얼었던 강물도/ 제 멋에 녹는데 왜 아니 풀릴까/ 오늘도 강가에서 기다리다 가노라/

그 늙은이가 기다리는 나룻배란 어쩜 경제사정의 해빙(解氷)과 그의 대를 이어줄 젊은 후계자의 출현이나, 그 늙은이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연극공연의 경제적인 후원자의 나타남을 바라는 소망일는지도 모른다.
Jevi4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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