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보내준 옷을 입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었다. 서울에 있는 아들로부터 받은 생일 선물
이였기 때문이다. 자식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조금만 신경을 써주어도 행복해지는 관계.
20년이 넘도록 키우고 교육시키고 했건만 내가 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아들이 보내준 옷 몇 벌에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 옷 저 옷을 입으며 아들 덕에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중에
부모님 생각이 났다. 따라서 회한에 잠기며 죄송함에 서글프기도 했다. 생전에 좀더 잘 해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마음과 내 자식으로 인해 행복한 마음이 교차되고 있었다. 물론 나는 자식들에게
도 미안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한인회장, 평통회장등을 하면서 자식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다.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했던
시기에 한인사회에 봉사라는 미명아래 많은 시간을 밖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다행이 아들과 딸 둘
다 잘 자라 주었고 지금은 오히려 나를 보살펴 주고 있다.
아무튼 아들이 보낸 생일 선물로 인해 부모님 생각을 하며 회한에 젖기도 했지만 사순절 시기였기
때문일까? 마음이 이웃으로 움직이기도 했던 따뜻한 시간들도 향유할 수 있었다. 이웃 어른들을
내 부모님같이 섬기는 길이 부모님께 향한 죄스러움을 조금이나마 보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순절을 보내기로 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에서 30여년을 살아온 것, 내가 몸 담은 한인사회의 어른들이 지키고
있는 이곳의 삶은, 축복 중에 축복이었다. 이 은총의 삶에 감사하는 것 역시 이웃을 사랑으로
품는 것이라는 생각하게 되었다. 소중한 이웃들과 함께하는 삶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이
땅에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나누는 평화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아들이 보내준 생일 선물들은 가정의 평온으로 가슴 가득히 차오르니 이번 사순절은 특별히
삶을 돌아보게 했다. 행복할 때 주위를 돌아보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질이라고 생각해 온
나였기에 이래 저래 아들이 고맙기만 하다. 하여, 아들로 인해 행복했던 시간들은 부모님께 향한
회한을 넘어 이웃을 생각 하게 만든 귀한 순간 들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