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름다운 동기회

2010-05-26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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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학 시 군대 복무로 늦게 졸업했지만, 입학 동기들은 내년이면 졸업 40주년을 맞는다. 제법 쌀쌀한 초봄의 교정에서 생소한 교가를 따라 부르며 입학식을 한 것이 어렴풋 기억나는데, 참 오랜 세월이 흘렀다. 지난주에는 동기회에서 졸업 직후부터 꾸준히 발간해 온 회보를 다섯 권의 두툼한 책으로 엮어 보내왔다. 연건동에 자리 잡았던 ‘함춘원’이라는 교정의 이름을 따서 제호를 삼은 ‘함춘지’는 올해 99번째 회보를 발간했으니, 일 년에 평균 2.5회 발간한 셈이다. 어느 단체나 마찬가지겠지만, 몇몇 참으로 헌신적인 동기들의 흘린 땀으로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해 왔다.
한 동기는 엄청 바쁜 회사 업무에도 불구하고 20년 이상 편집장으로 수고했으며, 그 끈질긴 희생에 경의를 표한다. 편집자들은 짐짓 학창시절의 실없는 우스운 말투로 회보를 편집해서 회보를 읽을 때마다 그때의 그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5권의 회보집은 잠시 나를 타임머쉰에 태우고 아련한 학창시절의 정거장에 내려놓았다. 1971년 4월에 발간한 창간호는 손으로 직접 써서 등사기로 복사하여 출간하였는데, 이후 타자기 사용 인쇄를 거쳐 컴퓨터 도입으로 한층 격상되더니, 벌써 오래전부터 천연색 사진으로 장식된 품위 있는 회보로 변모했다. 마치도 변사가 직접 대사를 읊조리던 무성영화에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현대 영화로 변모된 모습이다. 생각해보면 동기들과 학창시절을 보낸 것이 고작 2년인데, 그 세월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참 많은 추억 때문일 것이다. 한창 웅비의 꿈을 품을 시절에 나의 심장도, 가정도, 그리고 사회도 회색 빛이었고, 혼자 있을 때는 늘 허무와 분노의 거품을 품은 시절이었기에 나에게는 친구들의 존재가 참 소중했다. 이들과 함께 웃고 울고 할 수 있었기에 그나마 나를 지탱했던 것 같다.
보내진 회보집을 통해 새삼스레 다시 보는 해맑은 모습의 그때 그 모습의 사진들, 교정에서, 견학 가서, 또는 수학여행 때 찍은 사진들은 결코 행복한 시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많은 소중한 추억을 안겨준 그 학창시절을 그리워하게 한다. 유난히 남녀 동기들이 가깝게 어울리고, 유별난 동기들이 많았다고 기억되는데, 이제 이들은 어느 듯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고, 사회의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굳혔다.
동기들의 입대 소식으로 시작된 함춘지는 취업, 결혼, 개업, 승진 소식 등 이렇게 엮어지더니, 요즘 와서는 동기들의 소식보다는 아들, 딸의 결혼과 손자, 손녀 출생 소식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더 나아가 대학교, 제약업계, 연구소 등 사회의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인 동기들의 투고로 마치 전문잡지의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졸업 후 오랜 세월을 아마도 다른 동기회에서는 결코 유례를 보기 힘든 가까운 교제와 상부상조를 이어왔는데 구심점 역할을 한 함춘지가 효자 역할을 감당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아직도 동기들의 조경사에 많은 동기들이 참여하고, 각종 구실을 붙여 동기회를 소집하기도 하며, 또한 모교 발전, 장학, 구제 사업등 사회 기여를 위해 노력하는 동기회가 되었으니 참 자랑스럽다.
졸업 후 도미하여 이곳에 살고 있는 나는 동기들의 행사 소식을 들을 때마다 참여할 수 없어 참 아쉽지만, 회보를 통해 멀리서나마 그 끈끈한 친구의 정을 이어갈 수 있음은 감사한 일이다.
회보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난 40년의 긴 세월동안 한결같이 동기를 푸근한 정으로 묶어준 동기회보 ‘함춘지’가 나는 참 자랑스러우며, 이 자랑의 글을 통해 동기회에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았으면 좋겠다.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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