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10억의 유혹

2010-05-24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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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10억을 준다고 하면 의문의 가족의 죽음에 침묵하겠는가. 사인을 밝혀낸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산 사람이라도 좀 편하게 살아야지 않겠느냐 - 그렇게 생각하겠는가. 나는 과연 이런 생각에서 얼마나 자유로운가. 세상에 돈 가진 사람이 못할 노릇은 없는 모양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한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직원들이 줄줄이 암에 걸리는 사건이 노동계의 이슈가 되고 있다. 그 기업의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여공들과 엔지니어들이 백혈병 등 갖가지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거나 투병 중이다.

그런데 그 기업은 의문투성이인 직원의 죽음 앞에서 입막음용으로 돈을 들이밀었다고 한다.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2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딸의 죽음 앞에서 황망해하는 아비에게 10억을 미끼로 딸의 죽음에 침묵하라니. 그 사실을 확인하려는 한 언론사 기자의 전화에 회사 홍보실은 언급을 회피할 뿐 아무런 설명도 없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하지만 과연 나는 그 기업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과연 나는 그들의 죽음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인가. 그 기업의 핸드폰을 매일 들고 다니며 거실에는 그 기업의 평면TV가 걸려 있다. 세계적으로 그 기업의 브랜드 인지도가 올라갈수록 우리나라 기업이라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낀 적은 없었는가. 외국인들이 그 기업으로 인해 한국을 알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기업의 글로벌화에 무언의 지지를 보낸 적은 없는가.

폴 해기스의 영화 ‘크래쉬 (Crash, 2004)’를 보면 여러 개의 개별 스토리가 전개된다. 그 스토리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인간관계에서의 역학구도가 변화한다. 인종차별과 성추행의 가해자로 철저히 미워했던 이가 교통사고에서 생명을 구해주는 은인이 된다.

영화 속 8개의 스토리들은 개개인의 삶 속에서 서로서로가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또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과관계과 어떻게 펼져지는 지, 또한 삶 속에서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 무엇도 나와 무관하지 않다. 나는 그 기업의 발전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했을 것이고, 결국 그녀의 죽음에 머리카락만치라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반대로 나 또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 무지막지한 신자유주의의 경제 체제에서 기계부품처럼 회사 한켠의 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그 여공과 다를 바가 뭐가 있겠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의 병을 얻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의 죽음 앞에서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다시한번 눈을 좀 더 크게 뜨고, 곧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다. 한편 답답함과 무기력이 찾아들기도 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일일지도 모르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흔한 말로 진리는 꼭 밝혀진다고 믿는다. 그녀들을 위해 힘쓰는
노무사의 눈물에서, 또 그 가족들의 의지에서 다시 한번 그 믿음을 확인한다.

어른이 되는 것은 자기 맘대로 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라던 고등학교 은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나도 어른이 된 것일까. 이제서야 그 말씀이 고스란히 이해되는 걸 보면. 진정한 어른이라면 그 깨달음과 함께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그녀들의 죽음이 가슴 아픈 만큼 그들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는 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그녀’가 내 자신일수도, 내 동생, 내 이웃일 수도 있다.


김진아
캠벨 이웰드 시장분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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