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전에 뒷마당에 대추나무 묘목 한 그루를 갖다 심었다. 땅이 척박해서 그런지 잎 하나 내지 않고 죽은 듯이 가는 줄기 하나만 가지고 몇 해를 근근히 버티고 있었다. 작년 봄 어느날 나는 삽을 들고 나가서 그 대추나무한테 “ 너 죽었지? 나 이제 너를 뽑아버릴거야” 하고 말을 하였다. 그 순간, 정말이지 그 순간에 작은 대추나무 어디선가 연두색 빛이 아슴프레 보이는 것이었다. 나는 그 빛을 본 순간 대추나무가 “ 전 아직 살아있어요” 라고 온 힘을 다해 그 빛을 뿜어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뽑아버리기를 포기했는데 놀랍게도 바로 그 해에 이 나무가 푸른 잎을 키우더니 대추를 주렁주렁 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식물 속에도 마음이 있다고 말을 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지난 3월에 멘도치노(Mendochino, CA)로 출사를 가서 그곳에 있는 보타니칼 가든에 들렸다. 그 곳은 태평양까지 이어진 47에이커의 아름다운 화원이었다. 입구에 있는 작은 연못과 그 연못에 떠 있는 연꽃들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그 꽃잎들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고 다니는 비단 잉어들도 있었고 또한 넒은 화원에는 무수히 피고 지는 꽃들과 꿀을 얻기위해 벌꿀들은 잉잉 거리며 날라다니고 있었다. 특히 내가 갔었던 3월에는 철쭉(Rhododendron)이 한창이였다. 겹꽃과 홀꽃의 수 많은 종류의 철쭉들이 제 철을 만나 흐드러지게 한 때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는데 철쭉하면 그저 분홍색이려니 했던 내게는 하얀색, 노란색과 붉은 색, 보라색의 철쭉들이 그저 딴 세상처럼 새롭기만 했다.
그 속에서는 누가 뛰어날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를 껴안으며 한 무리의 아름다운 소 우주를 형성하고 있었다.
생명은 모든 사물, 무생물까지도 우주의 순환 리듬에 의해 상호공명 하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계절이 바뀌고 꽃이 피고 지는 것. 냇물이 흐르고 구름과 바람이 있고 바위가 생기며 달과 별이 있는 것 까지도 다 우주의 순환 원리에 의해 그 리듬을 맞추어 살아가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이 모든 자연의 순환 리듬 위에서 존재해 오고 있다. 상호공명의 발란스가 아니고 자연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삶을 살아오고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 인해서 인간과 우주와 소통할 수 있는 리듬이 깨지면서 교감의 영성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율려(律呂)란 말이 있다. 율려란 음악을 뜻하고 곧 리듬을 말한다고 한다. 그 리듬은 바로 자연, 우주의 리듬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혼돈과 질서의 원리속에서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자각하고 우주의 순환원리에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을 내 맡긴다면 그것이 곧 율려의 뜻을 이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율려에서의 마음은 우주의 질서와 자연의 이치 안에서 영성을 이루고 있고 그 영성은 바로 곧 생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생명의 핵심을 찾는 노력이 바로 율려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월 보타니칼 가든에서 사왔던 손바닥만한 레드우드 뿌리등걸에서 싹이 나왔다. 아무 생명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던 작은 나무토막 어디선가에도 생명은 움트고 있었던 것이다. 물속에 담가둔지 며칠이 지나자 레드우드는 맹아(burl)을 키우기 시작하더니 쑥쑥 자라나기 시작하고있다. 그 작은 레드우드 맹아에도 율려는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율려는 어디에나 있다. 우주의 빈 공간 속에도 있고 우리들의 마음 속에도 있고 동식물과 미생물의 마음 속에도 존재한다. 이것을 깨닫고 소통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우주의 생명은 죽지 않고 영성을 가진 존재로 더욱 빛을 찬란하게 발할 것이다. 작은 동식물 하나에도 측은지심과 공경심을 가지는 것. 살아있는 모든 생명 의식을 존중해 주는것이 바로 율려가 아닐까?
생명이란 정말 경외롭고 신비로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