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안희경 번역작가

2010-05-12 (수) 12:00:00
크게 작게

▶ 천하 태평 농부들

꽤 오래 전에 읽은 책 속의 구절이다. 생명 농사 짓는 농부 김영원님은 콩 심을 때, 한 알은 하늘의 새를 위해, 한 알은 땅속의 벌레들을 위해, 나머지 한 알은 사람이 먹기 위해 심는다고 말했다. 엊그제 Muir beach에 있는 Green Gulch Farm에 다녀왔다. 이 곳은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 산하에 있는 농사 짓는 선원이다. 너른 밭, 하늘 위로 온갖 새들이 휘저어 다녔다.

이들의 농사 짓는 마음도 비슷했다. One to eat, one to sow/ One for me, one for the crow. (한 톨은 먹고, 한 톨은 씨 뿌리고, 씨앗 하나는 내 꺼, 다른 하나는 까마귀 꺼.) 실제로 갓 싹이 난 상추 모종을 땅에다 심고 나면, 천 개 가운데 500개는 새들 차지란다. 견습 농부들은 투덜대며 새 쫓는 묘책을 내 놓지만, 고참 농부들은 그저 웃으며 ‘호로로루’ 소리만 지를 뿐이다. 그래도 그 소리에 땅 파먹던 새들이 푸드득 나무 끝으로 달아났다.

40년 전부터 이 땅을 일군, 웬디 존슨여사의 말이다. ‘게으른 농부는 잡초를 키우고, 부지런한 농부는 곡식을, 그리고 가장 훌륭한 농부는 땅을 키운다.’
그린 걸취의 밭은 검붉다. 포슬포슬하다. 전체 밭의1/3은 공동묘지 봉분마냥 두엄 더미들이다. 뮤어비치 최고의 유기농산물 공급소인 이들이 사용하는 퇴비는 말의 분뇨다. 사람의 것도 쓰냐고 물었다. 법에 저촉되는 행위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은 너무 오염됐기 때문에 쓰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태평 농법을 하는 김영문 선생 이야기를 해줬다. 제초제니 살충제 같은 온갖 화학무기대신에 무궁화, 진드기를 부려 농사짓고, 잡초랑 벼가 같이 자라도 벼 한 줄기에 100개도 넘는 실한 쌀을 여물게 하는 생명 농사꾼이라고. 땅심을 키우는 농부라서 그런지 그린걸치 농장 매니저가 그 책 좀 구해달라고 했다. 한국어 밖에 없을 거라고 하니 실망하는 얼굴이다. 들판의 주인인 온갖 벌레와 쥐, 까마귀까지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이 농부들의 마음을 갖는다면 우리 몸에 쌓이는 독소도 훨씬 줄어 들 거 같다. 시장 논리대신 땅을 키우고 생명을 살피는 이들의 마음이 기운을 북돋워 주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