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삶의 향기 / 임문자

2010-05-09 (일)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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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과 불

물과 불은 서로 상극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타오르는 불길을 끄기 위하여 물을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물은 죽어가는 것들을 살게하며, 사막에 내려와 잠자는 씨앗들을 꿈에서 깨우며, 위대한 힘으로 대지를 적시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품에 안는다.

그래서 물은 생명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작은 물방울이 마침내 바위를 뚫으며, 때로는 거대한 동굴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휘몰아 치는 물줄기가 어떻게 집을 삼키며, 성난 파도가 어떤 모양으로 절벽을 때리는지, 때로는 어떻게 살아있는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가기도 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물이 지니고 있는 그 거대한 힘 앞에서 겸손해질 수 밖에 없다.


걷잡을 수 없이 마음이 흔들릴 때, 잔잔한 바다위로 떠나가는 돗단배, 지는 석양, 그리고 바닷가에 솟아있는 외로운 바위 하나, 그러한 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불안정하였던 마음에 다시금 평온과 평정이 찾아 온다. 맹렬한 기세로 타오르는 불에 빗대어서 타는 가슴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그 마음도 물을 만나면, 불꽃처럼 타는 가슴도 진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불타는 마음. 젊고 싱싱하게 타오르는 그 마음이야말로 밋밋한 이 세상을 변화시킨 원동력이 아니었던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정열. 이것이 역사를 이끌어 간 추진력이 아니었을까.

불꽃은 파괴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우리가 두려워 하기도 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 힘을 이용하여 무엇인가를 바꾸고 끊임없는 변화를 이어갔던 것이다. 불의 맹렬한 열이 쇠를 녹여서 연장을 만들고, 눈에 보이는 것들의 모습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킨다. 불에서 나오는 온기는 혹독한 추위에서 우리를 보호하였으며, 그 빛은 어둠을 밝히면서 우리의 마음에 희망의 등불이 된다. 캄캄한 절망의 틈바귀를 뚫고 헤쳐나아갈 길과 방향을 알려주기도 한다.

더욱 경이로운 것은 따뜻한 기운이 생명을 탄생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따뜻한 봄은 찬 대지위에 꽃을 피운다. 그리고 새들은 알을 품고 새끼를 깐다. 거북이가 뜨거운 바닷가 모래속에 알을 묻어두면, 저절로 새끼가 탄생된다. 어미가 없어도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 주기만 하면, 모든 알들이 알에서 깨어난다. 온갖 종류의 씨앗도 생명의 기운을 받는다. 불이 지니고 있는 이 특성은 물과 함께 이 땅위의 생명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된다.

구름을 본다. 나의 몸속을 한바퀴 돌고돌아 세포를 하나씩 점검한 다음, 어느 사이에 빠져나가 드눞이 떠올라 나를 내려다 보는 구름. 나도 구름을 마주하고 올려다 본다. 그것은 어쩌면 나의 마음이며, 나를 내려다 보는 영혼, 아득한 꿈, 나의 분신, 윤회를 거듭하여 다시 태서난 나의 물방울. 나는 이 작고 영롱한 물방울과 어쩔 수 없이 깊은 사랑에 빠져든다.

나를 변화시키고 다시 태어나게 하는 불꽃. 그것을 사람들은 성령의 불이라고 말한다. 새롭게 태어난 다는 것, 거듭나서 다시 태어나는 불의 소산, 따뜻한 기운을 받은 다음 알을 깨뜨리고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 불은 그 바탕을 만드는 기운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너무나도 달라서 우리가 상극이라고 말하는 물과 불은 이와같이 생명의 근원이 되기도 하고 파괴하는 힘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닮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 물과 불. 분출되어 나오는 끊임없는 그 기운속에서 나는 오늘을 살아간다.

물과 불이 주는 생명의 근원이 나를 감싸고, 나는 그 속에서 싱싱하게 살아있다. 날마다 겸손한 마음으로 이 혼탁한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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