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 김정옥
2010-04-30 (금) 12:00:00
신발에 얽힌 이야기가 하고 싶다. 예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신발을 사 주지 않는 것이라는데 나는 그 사람에게 신발을 사 주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나의 신랑이 되어 주었고 지금까지 40년을 함께 살고 있다. 검정색으로 물을 들인 옷에 늘 검은색 군화만을 신고 다니기에 그 당시 남자 대학생들의 멋이겠거니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그 사람에겐 그 군화 한 켤레가 그가 가진 신발의 전부였다. 그래서 마침 성탄을 맞아 자연스럽게 명동에 가서 이름있는 구두 한 켤레를 선물했다. 새 구두를 신고 남산을 올라가는데 한 참 가더니 이사람이 구두를 벗어 들었다. 깜짝 놀라는 나에게 그가 했던 말 “닳을까 아까와서 못 신겠어.” 새 구두를 안고 차가운 아스팔트위를 맨 발로 걸어 가면서도 발이 안 시리다고 말했던 남자였다.
하루에도 여러번 지나 다니며 보는 우리집 진열대에 소중히 놓여 있는 낡고 작은 신발 한 켤레가 있다. 곤색 가죽이 앞도 옆도 다 벗겨져 희뿌연 색으로 보이는 내 첫 외손자의 첫 신발이다. 엎어지고 넘어져 가며 걸음마를 배울때 부터 내 손을 잡고 놀이터로 잔디밭으로 다니며 볼도 차고 미끄럼도 탔던 그 신발이다. 이 신발을 보고 있으면 다시금 오동통한 작은 손을 전적으로 내게 맡긴 체 이 세상 나들이에 마냥 들떠 좋아하던 한살 반짜리 그 아이의 모습이 떠 올라 내 마음 속을 기쁨으로 가득 채운다. 수 십번 수 백번, 걷기든 오르내리기든 지치지 않고 반복하며 스스로 다리의 힘을 키워내던 아이. 이 넓은 땅에 자신의 기운을 단단히 뿌리 박던 당찬 아이의 모습이 이 작은 구두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국에 계시는 시어머님과 친정 어머님의 신발을 사다 나르기 시작한 것이 정확히 언제적 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나갈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철철이 바꿔 드린 편이다. 어른들에게 편한 신발이라 하기도 하지만 두 분도 맘에 들어 하셔서 이 신발만큼은 늘 사다 드리려고 노력을 한 편이다. 얼마전 마침 남편이 나갈 기회가 있어서 새로 나왔다는 예쁜 모델로 사서 보낸 후에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발이라는 것이 모양이 바뀌면 또 발에 잘 맞는지가 궁금해 지는 법이니까. 드디어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장모님은 이제 신발이 필요 없으셔, 단 한 발자욱도 못 걸으시니까.” 몸이 불편하신건 다 알았었지만 어쩜 그렇게 까지. 전화에도 말씀 안 해 주시고. 책상위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누워서 보고만 계신다는 어머니의 신발이 왜 내 눈에는 이리도 흐리게 보이는 걸까. 내 가슴에 어머니의 얼굴이 따끔 따끔 와서 박힌다. 어머니 어머니 내 어머니. 김 정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