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우습게 보면 안 된다>는 오늘 내 주장의 등장인물이다.
스물 두 살 때, 장동건씨를 인터뷰 한 적이 있다. 청소년 프로그램을 위한 1분짜리 축하 맨트였으니까, 그의 자투리 시간에 메달리는 주눅드는 자리였다. 분장실에서 만났다. 녹음하는 15분 동안 그는 거울만 보았다. 안그래도 제일 잘생긴 신세대 스타였다. 마이크 든 나는 본 척도 안하고 축하하는 연기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가 화면에서 사라졌다. 대학 규정 때문에 공부에만 전념한다는 보도다. 나는 그가 공부한다는 것까지 얕보려 들었다. 몇 년 뒤 생명나눔실천운동본부의 포스터에서 장기기증을 한 그를 보았다. 영화 ‘친구’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때 내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거인이 될 한 예술가의 20대를 무시하고 말았다는 것을.
김미화씨의 이야기다. <쓰리랑 부부>로 인기를 얻을 때, 모든 기자들이 다들 그의 파트너와 인터뷰하길 바랬다. 그렇게 분장실로 찾아 오는 기자들 중에는 농민 신문같이 특정인을 위한 매체들도 많았는데, 선배 개그맨들이 귀찮아 했다. 김미화씨는 자기가 대신 해도 괜찮겠냐며 무안하지 않게 다가갔다. 그리고 십 년 뒤 김미화는 탑이 되었다. 그 때 그 초년 기자들도 일간지로 옮겨 자리를 잡은 다음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신현림시인이 몇 달 전 전화를 했다. 한 기자지망생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였는데, 일이 밀려 난처하다고 했다. 나는 학생이 공부를 위해 기성작가를 찾아 온 것을 보면 대단한 기개라고 거들었다. 그리고 다시 연락이 왔다. 인터뷰 해준 학생이 일요신문 기자가 되었단다. 인터뷰에 밥도 사주고 책도 사줘 보냈는데, 어느 날 기분 좋아 찾아왔단다.
나의 스물 두 살, 늘 억울함이 차 있었다. 열정과 감각은 하늘을 찌르는데, 세상은 나를 알아주지 않았다. “두고봐라!” 결국 두고 봐서 대단할 거 없는 길을 걸어 왔지만 그래도 스물 두 살과 스물 여섯살의 위치는 제법 달라 있었다. 불과 3, 4년이면 달라질 수 있는 것이 20대의 일이다. 20대를 걸어가는 후배들은 다 잡고 매진했으면 바라고, 20대의 빈손들을 얕보는 어른들은 곧 이어 큰 코 다칠 수 있음을 명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