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 김정옥(자영업)
2010-04-16 (금) 12:00:00
참으로 오랫만에 옷감 파는 가게엘 갔다. 넓은 매장에 온갖 아름다운 천들이 눈길을 유혹하고 마음을 들뜨게 했다. 한 때는 커튼이다 뭐다 직접 만든다며 고방에 쥐방울 드나들듯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아예 발길을 끊고 살았다. 다시금 와 보니 많은 여인들이 섬세한 눈길로 천을 고르는 여전한 모습에 마치 친정 나들이라도 온 듯 반갑다.
만나기로 한 친구가 환한 웃음으로 들어 선다. 유방암 수술을 받고 키모를 받고 있는 내 친구는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지 않았다. 두상이 하도 예쁘게 생겨서 우리들이 마네킹이라고 말을 해 주지만 정작 본인은 가발이나 스카프 또는 모자를 꼭 쓰고 싶어 한다. 그 중에 인터넷에서 30불이나 주고 샀다는 암 환자를 위한 삼각 스카프 하나를 즐겨 하기에 몇 개를 더 만들어 주고 싶어 만나자고 한 것이다. 3주 만에 한 번씩 8번을 받아야 하는 키모 데라피는 내 친구를 오랜 기간 힘들게 할 모양이다. 그런데도 키모를 받은 몹시 힘든 2주 후에는 그래도 기운을 차리고 저렇게 활짝 웃고 다니니 너무나도 기특하고 감사하다.
친구가 고른 4가지의 다른 천에 실까지 색을 맞추어 사 왔다. 본을 뜨고 다림질을 해 가며 정성을 다 해 바느질을 하는데 손놀림이 좋다. 그 예쁜 두상에 이걸 번갈아 쓰고 다니며 기뻐 할 것을 생각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배가 몹시 고프고 눈이 침침할 때 다 완성을 했다. 화사한 봄날에 피어난 꽃들이 배시시 웃고있는 봄내음 나는것, 여름에 시원한 썬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포인트를 주면 폼이 날것 같은 핫 핑크의 것, 단풍 든 가을처럼 분위기 있고 멋진 초콜릿색은 친구가 천을 고를때 부터 맘에 꼭 들어 하던 고품격의 것 그리고 마지막은 보라색 꽃이 물위에 꿈처럼 피어있는 환상적인 것이었다.
언젠가 부터 바로 가까운 주변에 암과 사투를 벌여야 되는 지인들이 하나 둘 생겼다. 정확한 의술은 물론이고 본인의 의지와 체력을 바탕으로 우리 모두의 기도와 정성이 합해져야만 뚫고 지나갈 수 있는 길고 힘든 터널이다. 물리칠 수 없으면 껴 안으라는 말처럼 병을 친구로 여겨 사이좋게 지내기가 그리 쉽진 않을 텐데도 다행히 잘 견뎌낸다. 그래서 일까 실한 열매가 반드시 맺힐 것이라 믿어 진다.
만든 스카프가 썩 잘 어울리자 친구가 활짝 웃으며 하는 말 “나 병 다 나아도 이 스카프 쓰고 골프 칠 꺼야!” 그녀의 남편도 나도 따라 웃었다. 삼각 스카프를 쓰고 멋진 샷을 날리고 좋아 소리치며 웃을 친구의 모습이 그려진다. 유난히 눈 웃음이 예쁜 내 친구의 머리 위에서 바람에 살랑거리는 스카프가 파란 하늘과 나무를 배경으로 한층 돋보일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김 정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