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창문을 활짝 열고 운전을 하니 아카시아 향 같은 꽃과 나무향이 밀려들어온다. 기분이 좋을 때 얼굴에 떠오르는 홍조처럼, 약간의 흥분이 얼굴에 스친다. 계절은 그렇게 오고 간다.
봄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계절이었다. 학창시절에 맞이했던 봄은 항상 약간의 어수선함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기간이었고, 아카시아 향에 취하기보다는 황사에 더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게다가 교정에 만개한 벚꽃과 목련을 며칠 볼라치면, 봄비에 금새 다 저버리고, 바닥은 어느새 떨어진 꽃들로 질퍽하니 너저분해져 버렸다. 그러는 사이 여름은 더운 열기를 몰고 성큼 다가와 있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대학에 가서도 봄은 내게 좋은 기억을 남겨주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잔인했다. 대부분의 연애의 끝은 봄이었고, 그래서 눈부신 봄 햇살이 내겐 참을 수 없는 고통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싯귀가 가슴에 박혀버렸던 시절이기도 했다.
분주했던 학창시절과 몇번의 연애의 시작과 끝을 겪고 나니 어느덧 이십대 중반. 한창 젊은 나이임에도 무엇에 그리 쫓기었던지. 다시 공부에 매달리고, 또 일을 하고 그렇게 살다보니 잔인한 계절이라고 사무치게 느꼈던 봄도 별 느낌 없이 한해한해 맞이하고 또 보내게 되었다.
고통 없이 한 계절을 보낸다는 것에 안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기쁨 또한 느끼지 못했다. 눈 코 입을 막고, 오감을 죽이고 살았던 시간들이었다. 그 답답한 몸에 쌓여간 건 고민과 생각들 뿐. 모든 문을 닫아 버렸으니, 빠져나갈 구멍도 없었을 것이고, 그 좁은 공간에서 머리 싸매고 짜낸 답마저도 명쾌한 해답이 되지 못했다.
인간은 동물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때론 망각하기도 한다.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과 고민에 빠져 있다 보면, 동물적인 감각과 욕구는 저 바닥 아래로 밀려나 버린다.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은, 가장 원시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 때론 가장 어려운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이 떠오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가슴이 답답할 때 숨통을 열어주는 것은 고민의 결과가 아닌, 단순한 동물적인 행동에서 비롯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잠을 푹 자거나, 맛난 음식을 먹거나, 파란 하늘이나, 푸른 숲과 나무를 바라볼 때, 머리가 맑아지고 숨도 편안해진다. 그리고 그런 순간, 예기치 않은 순간에 답을 얻게 된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마지막 부분에 보면, 주인공 피에르가 깜깜한 밤에 들판을 따라 걷다가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그 순간 삶의 의미를 충만하게 깨닫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그 장면 전까지 그는 많은 전쟁을 겪고, 사랑과 결혼 등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며 삶을 고뇌했었기에 그런 순간의 깨달음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순간이 어떤 순간인지. 그래서인지 오래전에 읽었던 작품이지만, 요즘 들어 이 장면이 더욱더 내 마음에 선명하게 떠오른다.
창밖으로 보이는 연초록 나무가 유난히 눈부시게 아름답다. 편한 트레이닝복과 운동화를 신고 집 앞을 한바퀴 돌고 나니 내 가슴속에도 봄의 숨이 가득 들어찬 기분이다. 눈 코 입을 활짝 열고, 몸 구석구석 오감에 귀를 기울인다. 조금 더 숨을 죽이면 꽃봉오리가 터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그리고 어느새 가슴 속을 답답하게 채웠던 고민과 잡념들이 봄을 담은 들숨에 서서히 물러난다.
올 봄엔 천천히 자주, 그리고 오래 걸어야겠다.
김진아 / 캠벨 이웰드 시장분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