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안희경(번역작가)

2010-04-07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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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기부하는 이유

제대로 기부를 해 본 적이 없다. 했어도 나중에야 그 일이 복을 지었겠구나 하는 정도니까 당시는 모르고 한 일이지 작심하고 하진 않은 것 같다. 게다가 사 년 전부터는 매우 뻔뻔스런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 대만 여행에서 본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타이페이, 한 도교 사원에는 김장독만한 즐비한 항아리에 향 꽂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복을 비는 사람들이 그득하다. 기도성취를 본 홍콩 갑부들이 많기 때문이다. 단 이 곳에서는 기도할 때 반드시 그 대가를 걸어야 한다. ‘다리 공사 수주를 받으면 2억을 기부하겠다’는 등 원색적인 마음을 먹고 기도한다. 다들 스스로의 다짐을 잘 지킨 것 같다. 사원은 돈이 넘쳐 보였다.

2006년, 우연한 부탁으로 기계를 사 보내는 무역을 하게 되었다. 커미션을 받았다. 늘 머리 싸매고 일해 푼돈을 벌어온 내겐 목돈이었다. 휠체어 재단에 조금 보냈다. 어렸을 적 본 기어 다니는 분들의 고통 원인을 헤아리지 못한 죄를 씻고 싶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주문이 오길 빌었다. 새 주문이 오면 꼭 보시하겠다는 숭악한 마음을 먹었다. 그래도 그 바램이 잘 들어 꽤 여러 번 도네이션을 할 수 있었다.

이듬해 그 일도 마무리 되고, 보시도 줄었다. 그러다 LA 불교 잡지 행사에서 만난 기자 덕에 다시 엉큼한 보시를 시작했다. 그 분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재주로 보시하면 된다 했다. 돈을 낼 형편은 아니기에 매 달 기사를 한 두 개라도 보내자 마음먹었다.

느닷없이 평소 좋아하던 작가의 책 번역요청이 들었다. 지난 주에는 캐나다 취재 부탁을 받았다. 비행기표와 렌트비를 받았다. 원고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그도 큰 비용이라 많은 기사거리를 찾아 쓰겠다 마음 먹었다. 좋은 일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도 가졌다.

세계적인 미술가를 만나 인터뷰하는 행운이 왔다. 염두에 두었던 취재 시리즈가 주목을 받으며 열리게 된 것이다.

한 동안 이런 엉큼한 마음을 바꾸자 생각했지만, 그도 욕심이라는 걸 알았다. 내 수준에는 속보이는 보시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성숙해질 날도 있으리라 또 속보이는 바람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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