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안희경

2010-03-2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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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1월에 생일을 맞는 우리 식구. 한국에서 자란 나와 남편은 다른 아이들 보다 빨리 일곱 살에 학교에 갔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미국에서 남 보다 늦게 학교에 갈 처지다. 그래서 지난 해 네 살 반 된 아이를 사립 유치원에 보냈다. 평소에 좋아하던 학교이기도 했고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배울 수 있으리란 믿음에서였다. 비싼 수업료를 어떻게 감당할까 막연함도 있었지만 그냥 밀어붙였다. 맘껏 놀며 어울리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과 차별 없는 분위기가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달 돌아오던 수업료 납부는 무서운 빚쟁이였다. 그저 중간에 그만 두는 일 없이 잘 마칠 수 있기를 빌며 마음을 졸여왔다.
올해 아이는 공립 킨더에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지금 다니는 학교가 너무도 좋지만 추가 비용을 내면서까지 보내는 것은 내겐 분수에 안 맞는 욕심이고, 온실같은 보호막을 해주는 것이 세상을 배반하는 일 같아 지난 1월 동네 학교에 지원서를 냈다.

남편이 원서 접수를 하고는 풀이 죽어 왔다. 원서에 있는 질문 때문이었다. 책을 읽을 수 있는지, 이름은 쓸 수 있는지, 알파벳은 알고 있는지 등… 10개 중 다행히 한 개는 답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신의 아이는 1부터 10까지 셀 수 있는가?
잠시 생각해 보았다. 학습 없는 유치원에 간 큰 애가 작년보다 무엇이 달라졌는지. 아이는 엉덩이를 빼지 않고, 버둥거리지도 않고, 몸의 부분 부분으로 중심을 이동하며 나무에 오른다. 레이디 벅 뿐 아니라 지렁이나 달팽이 등 꿈틀이 벌레들도 예뻐한다. 더불어 인형이나 블록을 놓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지어 한참을 풀어 낸다.

학교 원서를 내고 온 날부터 아빠가 알파벳을 가르쳤다. 지금은 1부터 30까지, 영어로 한국어로 스페인어로 셈한다. 알파벳도 대문자 소문자 잘도 안다. 하지만 반갑지 않다. 스스로 깨친 것이 아니라 주입된 지식이다. 시력검사 하듯 모양을 머리 속에 넣었고 더욱 재빠르게 반응하도록 훈련시킨 결과일 뿐이다.
공립 킨더의 한 학급은 30명이다. 선생님은 한 명. 미국의 공교육에서 점점 내가 배우던 30년 전 한국 분위기가 짙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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