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 22
2010-03-17 (수) 12:00:00
한 두 해 전쯤 전공 관련 기사를 읽다가 ‘캐치22’란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 논란이 있었던 것과 관련된 기사였으므로 2008년 여름쯤이었나 보다.
기사 속의 캐치22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궁금하여 검색을 해 봤더니 모순되는 상황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경에 빠진 상황을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캐치22라는 말은 미국 작가 조셉 헬러의 소설 ‘Catch-22’에서 유래된 말로 이 소설이 출간된 이후 소설 속의 상황처럼 불합리하고 모순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관용어구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때 이렇게 잘 검색해 놓고 그리고 그 의미에 맞춰 전공 관련 기사도 잘 이해해 놓고 정작 Catch-22란 책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동네 도서관에서 아주 똘똘하고 착하며 차분한 이웃집 한국 여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역시 책을 좋아하는 소녀답게 한 무더기의 책을 힘겹게 옮기며 대출하려는 그 학생의 책 무더기 속에서 Catch-22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마치 잘 아는 책을 발견 한 것처럼 반가운 마음에 “이 책 읽을 거니?” 하고 물었다. 그런데 그 귀여운 여학생을 가만 보니 이제 7학년인데 이 책을 벌써 읽는구나하는 놀라운 마음이 갑자기 드는 것이었다.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아이디어가 이미 있었던 모양이다.
우연하게 며칠 전 훼어팩스 지역에서 주로 한인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님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분이 그 동안 느낀 여러 한국 학생들의 얘기를 하시는 중에 독서와 관련된 공감되는 부분이 있었다. 한국 학생들 중 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월등하게 잘하고 특히 초등학교, 중학교 때 한국에서 온 학생들은 더욱더 미국에 와서 수학과목에서 빛을 발한다고 한다. 아마 치열한 한국 교육환경 속에서 선행학습, 반복학습을 통해 길들여진 훈련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이 고등학교, 대학교를 가면 수학은 잘 할지 모르나 영어와 기타과목에서 고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에 조금 늦게 온 탓에 영어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어릴 때부터 독서가 습관화 되어있지 않고 폭넓은 분야의 독서를 하지 않은 학생들은 학년이 높아질수록 수학 이외의 과목에서 독서를 많이 한 학생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큰 실력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만난 학원 원장님의 개인적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개인적 생각과도 참 맞는 말씀을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도 중.고등학교 시절 책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았다. 늘 첫 장부터 지루하게 시작되는 세계 고전문학들의 서두를 넘기지 못하고 덮은, 그래서 저자와 책 제목만을 겨우 기억하는 책들이 많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여러 일들에 부딪치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독서를 많이 했더라면, 그래서 폭 넓은 경험을 간접적으로 많이 했더라면 더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서, 더 옳은 결정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헤어질 때 마지막으로 나눈 학원 원장님의 말씀이 잊혀지지 않는다. 대체로 한국 부모님들이 독서를 잘 하지 않아서 아이들이 읽고 있는 좋은 책들을 거의 모른다고 말이다. 그러니 그렇지 않아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에 어디 자녀와 함께 좋은 책 한 권 놓고 얘기나 할 수 있겠냐고 말이다.
그 동안 독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과 반성만 했을 뿐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을 이제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독서클럽을 결성하였다. 내가 만든 이 독서클럽의 회원은 나를 포함하여 두 명 뿐이다. 바쁜 지인들에게 뜻을 전하고 함께 하기가 번거롭기에 급하게 두 명으로 결성하였다. 회원은 바로 나와 남편이다.
우리 독서클럽에서 첫 번째 읽을 책은 미국 문학의 영원한 기념비이자 20세기 가장 뛰어난 미국 소설로 꼽히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갯츠비’로 정했다. 이제 어서 읽고 며칠 후 남편과 함께 토론 할 일만 남았다.
안선영
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