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아가 필요한 것은 사랑
한국도 입양문화 문 열어야
벤자민의 어머니가 아이를 교실에 데려다 놓으며, 이 아이의 생모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그동안 미국에 살면서 입양한 아이를 많이 보아 왔지만 벤자민이 입양된 아이라는 것은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벤자민은 유난히 양모를 닮았다. 엄마를 닮았다는 말을 벤자민의 양모에게 했더니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얘기한다면서, 아마 생모가 병원에서 낳자마자 데리고 와서 키워 그런 모양이라고 했다.
벤자민의 어머니 얘기를 들으면서 놀라웠던 사실이 또 한 가지 있다.
누가 보아도 벤자민이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텐데, 그 양모는 입양한 사실을 당연히 알려야 하는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내가 자랄 때만 해도 한국에는 입양한 아이가 아주 드물었다. 그리고 입양을 한다 하더라도 이 사실은 아주 가까운 사람만 알고 있는 비밀인 경우가 많았다.
미국에서도 예전에는 아이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은 부모가 무덤에 갈 때까지 가지고 가야 할 비밀이었던가 보다. ‘너무 일찍 나이 들어버린, 너무 늦게 깨달아버린’이라는 책에서 정신과 의사 고든 리빙스턴은 서른네 살이 되어서야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에게도 가능하면 일찍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좋다고 믿는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세상에 비밀이란 없어서 결국은 알게 될 텐데, 그 사실을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듣게 되면 부모에게 속기라도 한 듯이 충격을 받게 되고, 더구나 그 때가 사춘기라면 더욱 수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대신, 어렸을 때부터 자신이 입양했다는 것을 알고 자라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부분이 되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엄마 나는 어디서 왔어?”라는 질문을 하는 나이가 되면, ‘엄마가 낳지 않았어도 달에서 별에서 온 아주 귀한 아이…’라고 얘기를 시작하면, 아이는 그 말을 그대로 믿게 된다.
몇 년 전, 우리 반에 중국에서 입양되어 온 릴리라는 예쁜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입양아에 대한 그림책을 가지고 와서 릴리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학교에서 만난 입양아들 중에 특별히 잊히지 않는 니콜라스라는 한국 아이가 있었다.
우리 학교 교사들은 니콜라스가 마치 만화에 나오는 아이처럼 귀엽고 개성 있게 생겼다고 하였는데, 그 아이는 천하에 둘도 없는 개구쟁이였다. 이 아이의 어머니는 이 개구쟁이를 힘든 기색도 없이 잘 키우셔서, 나는 그 어머니를 볼 때마다 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최근 아이티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서도 잊히지 않는 모습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다.
아이를 키워 본 부모라면 이 아이들이 겪을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클지 절로 느낄 것이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이 아이들을 입양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지만, 이 아이들의 입양은 그리 간단한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일선에서 이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부모와 친척들을 찾아주는 것이 최선이며, 이 아이들을 전혀 문화가 다른 미국으로 데리고 오는 것보다 아이티에 있는 사람이나 미국에 있는 아이티 사람이 입양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자기와 인종이 다른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다른 인종의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는 부모는 각기 다른 나라나 인종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특징들을 부담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아이티 아이들의 입양문제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 한국의 입양아를 떠올리게 된다. 미국 입양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국 전쟁에서 시작된 한국 아이들이다. 이제 한국은 전쟁도 없고, 너무 빈곤해서 아이를 고아원에 버릴 만큼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라도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에는 한국에서 아이들이 입양되어 온다.
한국에도 예전에 비하면 아이를 입양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어떤 씨인 줄 알고 남의 아이를 데려다 키우느냐”는 개념이 크게 바뀌지는 않은 것 같다.
1994년 ‘Growing up Adopted’에서 조사한 통계 자료에 의하면 입양한 아이들도 힘든 아이도 있고 수월한 아이도 있어 입양되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가르치는 학교에서 보아온 많은 입양아들도 마찬가지이다. 벤자민과 릴리는 늘 웃는 얼굴에 유순한 아이였지만, 천하의 개구쟁이 니콜라스도 있었고, 고집이 아주 센 알리스라는 아이도 있었다.
입양한 아이 키우기가 힘드냐는 질문에 어떤 부인은 “입양하지 않은 아이는 키우기가 쉬운가요?”라고 되물었다. 내가 낳은 아이라고 쉬울 것이라는 보장을 누가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낳은 우리 집의 두 아들도 키우기가 만만치 않았다. 큰 아이는 장애가 있어서 그리고 둘째는 영재라서 그랬다. 아이들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더라도 각기 각색의 성격을 가지고 태어난다. 단지 자기가 낳은 아이는 자기 핏줄이라는 생각 때문에 힘든 줄 모르고 키우는 지도 모른다.
이제 한국에서도 입양아를 받아들이는 가정이 많아져서 미국 땅으로 입양되어 오는 한국 아이가 없었으면 좋겠다. 세상의 아이들은 자신이 낳았건 입양을 했건 신비한 세상에서 온 귀한 선물들이다.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태어났건 간에, 변하지 않는 사랑과 흔들리지 않는 손길로 키운다면 반드시 훌륭하게 자랄 것이다.
홍혜경 / 프리스쿨 특수교육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