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 안희경(번역작가)
2010-02-10 (수) 12:00:00
옆집 할머니가 이른 아침부터 체리와 복숭아 나무를 심으신다. 과일이 열리면 반은 우리 집으로 넘어 올 거 같다. 할머니가 택한 장소는 가장 햇볕이 잘 드는 곳이기도 하지만, 늘 큰 딸네 야채와 달걀을 나눠주시는 마음으로 봐선 우리와 같이 드시겠다는 배려인듯하다.
지난 여름이었다. 할머니네 앞 뜰에 밥상 보 만한 하얀 차일이 쳐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여름을 처음 나는 철쭉을 위한 해 가리개였다. 그 덕분에 살아난 철쭉은 지난 주 볕이 알맞은 곳으로 옮겨갔다.
늘 꽃과 풀을 돌보는 할머니한테 새해마다 저녁 초대를 받는다. 가벼운 가족 식사라며, 테네시가 고향인 할머니는 남부음식을 내 놓는다. 푹 고아 맛을 낸 음식에다 대 여섯 가지를 더 차려 놓는 디너 정찬인데, 내겐 왠지 우리네 시골밥상 같다. 토속적인 것은 통하나 보다. 다만 되직하게 고아 낸 우거지에 발사믹 식초를 곁들인다는 것이 신선했다. 묵은 씨래기도 싱싱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나게 해 준다.
그 날 여든 다섯인 할머니 부부와 가족처럼 꽤 오래 이야기했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아프리카 사망률이 최근 줄었는가 하는 질문을 하셨다. 할머니와 큰딸의 반응도 진지했다. 마치 멀리 시집 보낸 조카딸의 안부를 묻는 것 같은 근심이 묻어났다. 교육, 사회 등에 대한 대화를 항상 나누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 때, 이야기의 시작은 개발에 관한 문제였고, 바탕에는 분배의 문제가 들어있었다.
그 가족은 어린 꽃나무 앞에서 무릎 꿇고 살피는 그들 어머니의 마음으로 세상을 둘러보는 것 같다. 지난 번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던 할머니 아들한테서도 베어난다. 그는 폭우에 막혀 무릎 넘게 차오르던 도로에서 하수구에 걸린 나뭇가지들을 맨발 맨손으로 뽑아 냈다. 그와 정치적 입장은 다르지만 몸에 밴 소탈함에 감동과 부러움을 느낌 적이 여러 번이다. 아마도 들꽃도 살리고 벌레도 지켜 주려는 그 어머니의 마음이 전이 된 듯하다. 식물과 소통하는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연대할 수 있는 희망을 보았다.
바람의 소리에 반응하는 식물처럼 생명과 通하는 정치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