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우수정(주부)

2010-01-28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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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집지 않은 전병

결심이나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니, 지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을겁니다. 그때는 진심이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다보니 본의아니게… 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어쨋든 처음 진심을 끝까지 지켜나갈 의지나 능력이 부족한 탓일테지요. 그러고보면 순간의 진심이란 것이 뭐 그리 중요할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진심이 귀한 것이긴 해도 유지하지 못할 진심이라면 그저 공중으로 쉽사리 증발해버리는 영롱했던 새벽이슬보다 더 허무한 것이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그러하듯이 저 또한 진심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긴 합니다. 마음에 없는 말을 시도때도 없이 해대는 사람 축에 끼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그 진심에 초지일관 일관성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초지일관에 대해서도 그렇고, 일편단심, 전심을 다하는 것도 그렇고, 제 삶을 돌아보면 부끄러운 것 투성입니다. 용기가 없어서일 수도 있겠고, 줏대가 없어서일 수도, 혹은 믿음이 없어서일 수도 있을테지요. 이유야 어찌됐든 이제는 순간순간의 진심만 남발하고 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분적인 진심만이 아닌, 이제는 무엇에든 전심을 이루어 살 때가 되었다는 자각이 비로소 든겁니다.

성경 속 호세아서 7장을 읽다보면 ‘뒤집지 않은 전병’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한쪽은 익고 한쪽은 설익은, 한마디로 안팎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말일테죠.남편과 아이들로부터 심심챦게 ‘히포크릿’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다보니, 이 구절이 심상치 않게 다가왔습니다. 어찌나 마음이 찔리던지요. 저의 이중적인 모습을 참으로 절묘하게 묘사해 놓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제 나이 40 초반. 인생의 대충 반을 살았다고 할 수도 있는 나이입니다. 이제는 뒤집을 때가 되었노라, 바야흐로 나머지 반도 익힐 때가 되었노라, 노릇노릇 쫄깃쫄깃 안팎이 골고루 익은 전병이 되거라… 마음 속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옳소이다, 옳소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뒤집어야 할텐데... 지금까지 익숙했던 것들을 뒤집어 바라보는 시야와, 뒤집어 살아보는 용기 또한 필요함을 느낍니다. 그런데 이게 또 만만치가 않군요. 누군가 뒤집기 전에는 자신의 힘으로 훌떡 뒤집을 수 없는 것이 나약한 전병의 한계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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