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아이린 서(엘림투자대표)

2010-01-2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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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 반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당신은 알게 될꺼예요. 당신이 두개의 손을 갖고 있음을. 한손은 당신을 돕기위해. 그리고 나머지 한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위해. 샘레븐슨(미국시인)

-오드리헵번이 그녀의 마지막 크리스마스때 아들에게 읽어준 시의 마지막 부분 -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시골에 사셨던 외할머니댁 가는것을 좋아했다. 처음 시골에 가는날, 어머니께서 내 가늘한 긴머리를 양갈래로 땋아 예쁜방울로 묶고, 하얀 블라우스에, 반짝이는 빨간 투피스, 흰양말에 새까만 구두를 신기셨다.


혼자 집앞을 서성이는데,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내게 몰려왔다. 아이들은 나를 업어서 개울도 건너주고, 가재랑, 물고기도 잡아주고, 뒷산에서 하루종일 뛰어 놀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을때, 단정히 땋았던 머리는 다 풀려 이리저리 바람에 날리고, 옷, 구두와 얼굴은 흙먼지에 뽀얗게 되었다.

대신에 내 조그만 손가락마다 노란 꽃으로 만든 예쁜 반지가, 화사한 들꽃을 엮어만든 왕관과, 팔찌와 목걸이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할머니댁에서 떠나는 날 눈물이 범벅되어 돌아오던 추억이 오랜세월 잊혀지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중 태어난 한 여자아이가 홀어머니와 살았다. 모녀는 전쟁중 먹을 것이 없어 아사 상태에 이르렀는데, 그때 한 구호단체 직원이 모녀를 찾아 음식을 제공했고, 모녀는 생명을 지탱할 수 있었다.

20 여년후, 그 아이는 세계적인 영화배우로 성장했고 생명을 구해준 유엔아동기금(UNICEF)의 홍보대사가 되어 전 세계를 방문했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제가 받았던 사랑의 빚을 갚을 차례예요. 저를 구해준 단체를 위해 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말 기뻐요.”

이 영화배우의 이름은 오드리헵번. 누군가의 사랑의 손길이 없었다면 우리는 외모와 마음이 모두 아름다운 명배우의 화려한 연기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낯선시골에 처음 방문한 나를 반갑게 맞아 들꽃을 엮어 온몸에 휘감아주던 시골아이들을 추억하며, 사랑의 빚을 서로 주고 받으며 살아가는 이 세상이 참 정겹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주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 오드리헵번의 영화를 한편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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