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폭우과 엘니뇨 / 김희봉(수필가, 환경엔지니어)

2010-01-26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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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벽두부터 폭설과 이상한파가 지구촌에 몰아쳤다. 그런데 정월 중순부터는 캘리포니아 전역과 텍사스, 애리조나 등지까지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수년 간 타는 목마름으로 허덕인 대지에 낭보가 아닐 수 없다.

캘리포니아는 3년째 가뭄이었다. 오랜만에 쏟아 붓는 장대비는 사람들의 마음을 후련케 하고, 산천초목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다. 비록 산사태가 나고 교통이 막히지만 가뭄의 고통에 비하면 견딜만하다. 바닥났던 저수지들이 이번 강우로 75%이상 차고, 시에라 산정엔 적설량이 거의 평년수준에 도달했다는 고무적인 소식이다. 앞으로도 비가 더 올 것이란 기상 예보다.

사실 텍사스는 50년만의 최악의 한발에 허덕이고 있었다. 흙이 말라 1904년이래 처음 목화모종에 실패할 정도였다고 한다. 목화밭이 황폐해지고 축산농가 들도 도산 위기에 처해 손실이 약 40억불에 달했다. 다행히 지난 늦가을부터 내린 비로 농부들이 한숨 돌리고 있다.


왜 이제야 비가 오는 것일까? 엘니뇨(El Nino)가 드디어 온 것이다. 기상청은 작년 가을부터 태평양적도권의 해수 온도가 화씨 3.2도 높아져 엘니뇨현상이 시작됐다고 발표했다. 엘니뇨는 폭풍우를 동반한 저기압권을 형성하고 캘리포니아 연안에 머물다가 비로소 상륙한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엘니뇨는 적도근처 남미 쪽 해수가 더워지는 일종의 이상기후 현상이다. 19세기경 페루의 어부들이 수년에 한번씩 크리스마스 무렵부터 더운 해류가 흘러오는 걸보고 아기예수를 연상, 사내아기란 뜻의 엘니뇨라 불렀다고 한다. 엘니뇨가 오면 해수온도의 상승으로 집중호우가 느는 대신 바닷물이 섞이질 않아 플랑크톤이 격감하고 어획량이 줄어든다. 피해도 크지만 가뭄이 해소되는 이점도 있다.

왜 엘니뇨가 생기는 것일까? 평상시 태평양 적도에선 기압이 서쪽(인도네시아 연안)이 낮고 동쪽(페루 연안)이 높다. 그래서 무역풍이 서쪽으로 불면서 더운 해수를 나른다. 그러나 해면기압간의 진동현상(SO)으로 무역풍이 약화되면 동태평양이 더워진다. 엘니뇨가 온 것이다.

엘니뇨와 반대로 무역풍이 강해지면 라니냐 (La Nina) 현상이 일어난다. 동태평양의 온도가 내려가면서 용승 현상이 활발해져 플랑크톤이 느는 대신 가뭄과 산불이 잦게 된다. 엘니뇨와 라니냐의 주기는 2-7년 사이로 불규칙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지난 번 캘리포니아에 왔던 엘니뇨는 1997-98년이었다. 당시 집중호우로 러시안 리버가 범람 홍수피해가 컸다.

그런데 엘니뇨는 지구온난화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서로 다르다. 지구온난화로 해수온도가 높아지는 건 사실이나 엘니뇨 발생빈도와 직접적인 함수관계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엘니뇨 발생지점이 점차 태평양 중앙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따라서 한반도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는 발표가 나오고 있다.

지난 11월 말, 샌프란시스코 관광명소 피어39에 수년간 진을 치고 살던 물개들이 하루아침 사라졌다. 1,700마리를 헤아리던 수가 증발한 것이다. 어부들이 쫓아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최근 수백 마일 북쪽 오레곤주 해안에서 새 둥지를 트는 천 수백 물개 떼를 발견했다. 엘니뇨현상으로 먹이를 따라 북상한 그 물개 떼들이었다.

오랜 세월 자연은 서서히 변해왔다. 그런데 최근엔 지구생태계가 이렇게 순간적으로 변할 수도 있음에 전문가들도 놀라고 있다. 지구 파괴도 휴거(Rapture)처럼 찰나에 일어나지 않을까? 내리는 비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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