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글동무 / 윤선중(원불교 샌프란시스코 교당, 부교무)

2009-12-23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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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기고

아주 어릴 적 친구를 ‘글동무’라 불렀습니다. 집에 친구를 데려오면, 할머니께서 “네 글동무냐?” 하고 물으셨지요. 글동무란 같은 곳에서 함께 글을 처음 배우는 친구를 말합니다. 같은 학교, 같은 반에서 함께 글을 배우는 친구. 글동무란 말을 떠올리니, 참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동심의 세계를 함께 나눈 친구들, 처음으로 글자를 함께 배운 친구들.

문자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한 어린아이들은 예전에 보던 세계와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합니다. 꽃을 색깔과 모양과 느낌으로 보다가 이제는 책을 통해 정보를 얻게 되면서, 꽃에 대한 다양한 지식, 정보들을 습득하게 됩니다. 식물학적으로 꽃을 종류별로 나누기도 하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을 때 신기해하면서 친구들에게 서로 자랑도 하고 뽐내기도 하지요.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것은 분명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지식에 점점 길들여져 가면서, 우리는 어린 시절, 글을 배우기 이전의 경이로운 세계를 잃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요. 많은 정보를 접하고, 거기에 휩쓸려 살다 보니, 어느새 문자와 개념으로서가 아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느낌으로 보던 세계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요. 하루를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사람을 바라보고, 느끼고, 듣고 하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글동무가 같은 곳에서 함께 공부하는 친구를 의미한다면 글벗은 글로 사귀는 친구를 말합니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친해지는 친구라고 할까요? 어린 시절, 안네의 일기를 참으로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안네가 자신의 일기장에게 이름을 붙여준 것을 따라 저도 일기장에다가 이름을 붙였었지요. “풀빛”이라고. 유난히 녹색을 좋아했는데, 순수한 우리말 이름을 찾다가 “풀빛”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민들레를 보았지요. 아무도 봐주지 않는 노란 민들레가 가여워 그날은 ‘풀빛’에게 민들레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더랍니다. “민들레야, 네 모습이 참 예쁘구나. 그런데 아무도 봐주는 사람이 없으니,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외롭고 슬프겠구나. 하지만 괜찮아 민들레야. 내가 있으니까. 너의 아름다운 모습을 봐주는 내가 있으니까 말야.”

초등학교를 처음 들어가던 날 어찌나 설렜는지. 어머니께서 새로 사주신 빨간 책가방을 새벽에 깨어서 몇 번이나 매보고, 또 매보고 했던지. 한쪽 구석에 놓아 둔 책가방을 메고서 방안을 한 바퀴 두 바퀴 이렇게 돌면서 학교 가는 첫 날을 그렇게 기다렸습니다.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나는 몇 반이 될까. 옆 집 친구와 같은 반이 될까. 온통 마음은 설렘과 기대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요즘, 이런 설렘과 기대와 호기심으로 자신을 돌아보면서 나 자신과 글벗이 되어봄이 어떨지요. 글동무와 함께한 어린 시절, 마음으로 통하던 세계의 느낌을 되찾아서 말입니다. 눈을 잠시 감았다가 세상을 보니, 제 앞에 진정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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