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 김인숙(목회자의 아내)
2009-12-07 (월) 12:00:00
부흥하는 교회, 큰 교회의 초점은 자연히 담임 목사의 설교에 모아 진다. 교회가 커질수록 선교회와 같은 부수적인 기관의 역할이나 유기적인 관계가 새로운 성도들을 모이게도 하지만 대부분 교회를 선택하는, 가장 말하기 쉬운 첫째 조건으로 목사의 설교를 꼽는다. 그래서 설교를 듣는 것으로 믿음 생활의 전부로 여기는 사람들은 그도 저도 다 귀찮게 여기고, 사람 만나는 것 싫고 하여 교회에 나가기 보다 인터넷 또는 유명한 목사님의 재미있는(진정한 회심은 둘째문제) 매체 설교를 듣는 것으로 만족해 하기도 한다.
작은 교회, 성장이 없는 교회, 양적 부흥이 안되는 교회는 자연히 담임목사의 설교에 가장 기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을 하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쉽게 그러한 설교에 성령이 없고 은혜가 없는 것으로 단정 짓는다. 내가 보기에도 작은 교회 목사님의 설교는 세상적인“재미”가 없고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 또한 아무런 특징이 없는 무미 건조한 분인 경우가 많다.
목사의 설교는 하나님 말씀을 대언하는 것이다. 그 말씀 전달과정(Delivery)이 목회자마다 특유의 자질과 성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신학교 과정에서도 설교 “Delivery”에 관한 것을 학문적으로 또는 훈련으로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과 같은 시대의 인기있는 설교를 보면 실제 내용보다 이 딜리버리에 치중하는 경향이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물론 이 딜리버리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듣는 사람마다 마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돌짝 밭과 길거리에 뿌려지는 설교밖에 될 수 없다. 결국 설교는 받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본다. 한마다로 필(Feel)이 꽂히는 설교는 받는 사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은 것을 더 기뻐하고, 돌아온 탕자를 한 없는 기쁨으로 맞이하는 분이다. 수백명, 수천명을 한꺼번에 하나님 앞에 돌아 오게 하는 설교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찾은 한마리의 양, 마음 돌이킨 탕자가 있다면 그 보다 더 큰 기쁨과 하늘의 칭찬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매주일 말씀을 들으며 바로 그 한마리의 양, 또 그 탕자가 되고 있으니 우리 작은 교회 목사님의 설교는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