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 아이린서(엘림투자대표)

2009-11-2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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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美)에 얽힌 추억 3가지”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생 텍쥐베리->

나는 여름엔 사막같고, 겨울엔 숨겨져있던 사막의 샘이 터져나오듯 비가 흩날리는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 집앞 양쪽으로 늘어선 나무에서 하루종일 붉고, 노란 나뭇잎들이 흩날리다 길에 수북히 쌓인다. 이제 또 한해가 저물어 가는 모양이다. 가는세월이 아쉬워 앨범을 하나 꺼내 흑백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까맣게 잊었던 옛 추억이 가슴 뭉클 새롭다.

나의 부모님은 늦은 결혼을 하신후 아기를 무척 갖고 싶어하셨는데, 3년이상을 온가족이 기도하며 기다리던중, 정월 초하루, 구정날 내가 장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내게 반짝거리는 빨간색 재킷과 미니스커트 투피스, 샤랄라한 블라우스, 드레스에 핀, 모자, 구두, 장갑까지 잘 맞춰 입히셨고, 첫돌부터 매년 생일마다 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어주셨다. 6살때는 리틀 미스코리아라는 대회에도 내보내셨는데, 인기 코메디언 이기동 아저씨와 꼬마신랑 김정훈씨가 사회자였었고 당시 TV에도 나왔다. 아마도 그때 어머니 눈에는 내가 세상에서 젤 이뻣을테지만, 객관적인 심사위원들은 내게 진선미 중에 미(美)를 주었다.

초등학교 3학년때 어머니는 내가 성적표를 가져오는것을 무척 기뻐하셨다. 성적표를 가져오는 날이면, 환하게 웃으시며, 안아주고, 수고했다고, 아주 잘했다고 하시고, 좋아하던 찐빵도 쪄주셨다. 그런데, 그때 내 성적표엔 전과목이 All 미(美) 였다…. 나는 부모님께 맞은적도 없고, 꾸지람도 들어본적이 없는데, 내가 뛰어난 아이라서가 아니라, 부모님께서 나를 하늘의 귀한 선물로 생각하셨기때문이다.
초등학교때 부터, 왠지 나는 미(美)국에서 살고싶었고, 고3때 미국의 작은 아버지께 연락드려 초청장을 받았다. 어머니께 보여드리자, 바로 찢으시며 “이세상 살아가면서 사람을 의지하려고 해서는 절대 안된다. 네 스스로 자립할수 있어야 미국도 가는것이지, 남에게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져선 안된다.”고 단호히 말씀하셨다. 정말 단 한번도 내가 원하던것을 막지 않으시던 어머니셨기에 더 야속해서 몇일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기억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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