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40일간의 나들이 (1) / 주평(아동극작가)

2009-11-1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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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산책

무슨 일이 있기에 몸둥아리를 저렇게 비행기 좌석에 꽁꽁 묶고 가고 있는 걸까? 누가 오라고 손짓 하기에 이렇게 하늘강을 건너 흘러 가고 있는 걸까? 신종 Flu의 창궐을 알리는 메스콤의 아우성 같은 소리침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좌석이 콩나물 시루의 콩나물 같이 빽빽하다.
지난달 8일, 나도 이 흐름 속에 끼어 한국으로 날라 가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 다녀 온 고국땅인데도 시집 간 색씨 3년만에 친정 나들이 하듯 느껴짐이, 내 나이 탓 때문일까? 10월 9일, 비행기는 나를 인천국제공항에 내려 놓는다. 입국심사대 까지 10리 길 만큼 멀다. 그러나 그 길의 거리가 멀지 않게 느껴짐은 작년 한국 나들이 때와는 사뭇 달르게 길 오른 쪽 벽에 한국의 아름다운 풍경과 전통민속놀이의 갖가지 모습이 대형 스크린으로 영상처리 되어 있어, 입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국을 찾는 나에게 또 한번 보람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한국을 처음 찾는 외국인이나 관광객의 눈에는 그 얼마나 아름답고 이색적으로 비쳤을까?
한국 온지 이틀째 날, 나는 내 고향 땅 통영으로 달려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처럼 내가 도착하는 날이 1기생부터 8기생중 통영에 머물어 사는, 소위 통영 직힘이 동창들의 모임인 ‘오동나무 벌’ 이라는 모임의 정기모임 날이었다. 그래서 통중 2기생인 나는 자연스레 그 모임에 동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날의 모임이 마치 나의 환영회 모임 같이 되어 버렸다는 말이 한 동창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60년 이상이란 세월의 강이 흐른 뒤에 만난 13명의 늙은 동창들! 세월의 강에 떠내려 가지 않고 살아 남은 그들이었지만, 얼굴 마다에 세월의 흔적을 나타 내는 저승꽃들이 피어 있었다. 우리들은 지난 날의 추억담을 어린애들 같이 조잘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은 헤어졌다. 언제 다시 만날른지, 만남이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를 70이 넘고 80살이 넘은 노인들의 헤어짐은 그저 스글프기만 했다.
통영에 온 다음 날 나는 통영 중심가에 세워진 삼성타워 전광판 앞에 섰다. 통영에 온 중요 목적중의 하나인 ‘통영을 빛낸 5인의 문화예술인’ 윤이상, 박경리, 유치환, 김춘수씨들 틈에 끼어 흐르는 나의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서 였다. 고인이 된 네분의 선배들과는 달리 단 하나의 생존자인 내가 직접 전광판을 바라보면서 수틀에 수를 놓듯이 고향을 그리며 노래한 많은 글을 써온 나를 내 고향이 모른체 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젖게 하였다. 이어서 나는 그 날로 통영시장과 자리를 같이 했다. 나의 중학교 후배이자, 문학계의 후배인 수필가인 진여장 시장, 그는 나에게 두 가지 기쁜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 첫 번째가 통영시가 통영에다 종합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한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니 날 더러 일년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와서 특강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가 내가 진시장에게 제의한, 부산국제영화제나, 광주비엔나레 그리고 춘천인형극제처럼, 내가 자란 통영에서 연례행사로 ‘통영아동극축제’를 개최함이 어떻게냐는 나의 제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겠다는 그의 답변 바로 그것이었다.
지난 날, 내가 통영연극의 기초를 닦은 통영에서의 예술고등학교의 설립! 그리고 내가 걸어 온 길인 아동극축제의 개최 ! 이 모두가 나에게 안겨준 기쁜 소식들이었다.
일본에서 활약중인 김소운씨의 수필중 내 어머니가 비록 문둥일지라도 나는 내 엄마를 좋아하게 될 것이라 는 말은 엄마품에서 풍기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젖 냄새 때문일것이다. 그런 뜻에서 통영이 나에게 안겨준 기쁜 소식들이 바로 엄마의 감싸암 같은게 아닐까,
40일 여정의 시작인 통영에서의 2박 3일! 나는 서울로 향하는 고속 버스에 몸을 담고 통영시가 내리다 보이는 고갯마루를 넘어 갔다. 나는 전에 없이 아름답게 보이는 내 고향 통영을 뒤돌아 보고 또 뒤돌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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