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알재단 서머 아트 클래스 (3) 몬드리안

2009-07-10 (금) 12:00:00
크게 작게

▶ 색.선 통해 완전하 추상 도달

네덜란드 태생의 피에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은 마티스와 피카소가 활짝 열어놓은 추상으로의 길목을 더 힘껏 열어 제친 화가였다. 마티스가 야수파를 통해 색채를 해방시키고 피카소가 큐비즘을 통해 선과 3차원 공간성을 전복시켰다면, 이제 몬드리안은 재현으로부터의 완벽한 해방이후 색과 선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몬드리안 이후 회화는 이제 3차원적 공간성은 전혀 재현하지 않은 채, 캔버스 원래의 공간성인 평면적인 2차원 공간으로 머무르게 되었다.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선은 수평선과 수직선으로만 이루어져있고, 색은 빨강, 노랑, 파랑의 원색과 흰색과 검은색, 혹은 가끔 회색만이 존재한다. 몬드리안은 선의 기본인 수직선과 수평선이 팽팽한 대립관계를 유지하고 원색들의 배치 역시 하나의 색이 화폭을 지배하는 것이 아닌 다른 원색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주적 질서를 표현하는 이상적인 방식이라고 믿었다.

1914년부터 몬드리안은 작품의 모든 제목을 구성(Composition)이라고 붙이게 되는데, 이는 회화가 단순히 정물이나 풍경, 인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닌 그 보다 더 높은 단계의 이상을 제시할 수 있는 독자성(autonomy)를 갖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였다. 그는 1917년부터 네덜란드 예술운동인 드 스틸(De Stijl, The Style)에 참여하게 된다. 드 스틸 운동이 추구했던 것은 균형과 조화였고, 예술뿐만 아니라 삶과 사회에 대한 하나의 이상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단순한 미적 탐구가 아닌, 사회적 이상향을 제시하는 도구였다. 그의 작품과 글은 계속해서 호의적인 대접을 받았지만, 정작 작품의 판매를 통해 생계는 유지하기 어려웠다. 60세가 될 때까지 여러 번 생계의 위협 때문에 전업 작가로서의 꿈을 포기하려 했었다.


1936년 MoMA에서 열린 ‘큐비즘과 추상미술(Cubism and Abstract Art)’전을 통해 몬드리안의 이름은 미국에도 알려지기 시작했고 1940년에 뉴욕에 정착하게 된다. 모마에 있는 그의 마지막 작품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Broadway Boogie Woogie, 1942-43)’에서 나타나듯 그는 뉴욕에서 받은 신선한 영감을 작품에 적극 반영했다. 2,30년대 순수 추상을 통한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몬드리안은 말년에는 재즈나 도시의 거리모습에서 영감을 얻었고, 그의 회화 스타일은 건축이나 가구 등 실생활에도 적용되었다. 그의 사후 공개된 작업실에서도 그가 작업실 벽을 회화에서처럼 장식했음을 볼 수 있다.

* 강사 김지혜는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미술사 박사과정 재학 중이다.
HSPACE=5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