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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축제·와인열차 있는 가을에 오세요”

2009-06-1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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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영동군

“포도축제·와인열차 있는 가을에 오세요”

지방 1급수 하천인 초강천 부근의 경치. 여름이 되면 짙푸른 녹음에 훨씬 멋있는 곳으로 변한다.

“포도축제·와인열차 있는 가을에 오세요”

지게에 농기구를 싣고 걸어가는 할아버지. 평생을 땅과 함께 살아온 농부의 모습이 담겨 있다.

국토종단 열 나흘째다. 영동역 앞 ‘3,000냥 식당’에서 3,500냥짜리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값이 오르면 식당 이름도 바뀌어야지 않느냐고 말했더니 주인은 웃기만 한다. 옆자리 손님에게 경상북도 상주 가는 길을 물으니 지름길을 가르쳐 준다. 원래 계획했던 황간면 코스를 버리고 그 길을 따르기로 했다. 지도 보다 현지인의 안내가 더 정확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영동 군청 앞에 있는 ‘신바람 난 빵집’에 들렀다. 주인아주머니가 영동의 자랑거리들을 소개 한다. 가을에는 포도축제가 열리고, 포도가 많다보니 샤토마니라는 와인공장이 들어섰고, 와인을 선전하고 팔기 위해 와인 열차를 운행하여 외지인들이 공장 견학과 와인 체험을 하게 한다고 일목요연하게 설명한다.


제과점 주인 한바탕 영동 자랑
짙푸른 녹음 초강천도 눈길 끌어


국악의 대가 난계 박연 선생을 기리는 축제도 가을에 열린다고 했다. 어제 군청에 전화하여 이 지방 홍보거리를 물었을 때 신통한 대답을 못 들었는데 이런 아주머니를 홍보담당자로 앉히면 어떨까 싶다.


영동대학 앞을 지나다 원룸 아파트 임대 안내를 보고 전화로 값을 물어보니 일 년에 240만원, 월세로는 23만원이라고 대답한다. 미국과 비교해 보니 많이 싸다.

어디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둘러보니 ‘○○가든’이란 간판이 보였다. 쏘가리탕, 빠가탕, 보신탕전문, 간판이 붙어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개 십여마리를 우리에 가두어 기르고 있다. 쳐다보는 눈매가 안쓰럽다. 용산 면사무소 부근에서 점심을 먹었다. ‘뿡 보리밥집’이란 간판이 재밌어 들어갔다.

정갈한 푸성귀 반찬에 보리밥을 양푼에 비벼 먹었다. 맛이 특별하다. 출발하려고 아내의 배낭을 들어보니 묵직하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힘들어 하는 성 싶어 몇 개를 자기 배낭에 옮겨 넣었단다. 걸어보니 짐은 줄일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줄이는 게 상책이다. 물병 한 개와 반개 차이도 이젠 쉽게 느낄 정도다.

그러나 약간의 짐은 오히려 걷는데 보탬이 된다. 거센 물길을 건널 때는 짐을 진 자가 더 쉽게 건너가지 않던가. 인생이라는 강도 마찬가지다. 살아보니 알겠더라.

길가 밭에서 머리 허연 농부가 비닐에 구멍을 뚫고 있었다. 감자 싹이 나오도록 구멍을 만들어 주기 위함 이란다. 저 싹이 자라 어느 날 꽃을 피우면, 아이들은 “자주색 꽃은 파보나 마나 자주색 감자”라는 노래를 부를 것이고, 청춘들은 은은하고 무던하게 핀 감자 꽃을 바라보며 달빛 아래 사랑을 속삭일 것이다. 저렇게 싹 하나에도 온 정성을 기우리는 농부의 손길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간다.

현수막이 걸려 있다. “농산물 빈집털이 빈번 발생 외부차량 번호단속 양해바람” -금계리 주민일동-. 농산물 털이가 심한 모양이다. 사방으로 길이 뚫려 있어 자동차를 가져와 농민들이 땀 흘려 가꾼 농작물을 순식간에 털어간다고 한다. 감자 싹 하나를 틔우기 위해 하루 종일 허리 굽혀 비닐에 구멍을 뚫고 있는 저 늙은 농부의 소망을 한 순간에 훔쳐가다니. 이런 나쁜 사람들이 있나!
마침내 경상북도 상주시 입구에 도착했다.

‘전통과 문화, 자연이 함께 하는 경상북도’라는 표지판이 맨 먼저 보였다. 그리고 모서 초등학교 앞에는 ‘WTO 쌀 개방 반대’라고 쓰인 현수막에 눈에 들어왔다. 심지어 길가에 쌓아놓은 비료포대에도 똑같은 말이 인쇄되어 있었다. 다른 지방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걸어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국토종단 중 처음 보는 모습이다. 왼손에 삽자루를 오른손에는 낫과 작대기를 들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모양이 우리 농촌의 옛 모습 그대로였다. 그래서 얼른 달려가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하니까 희미하게 웃으시며 허락했다.

지게를 보니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장날 지게를 사서 짊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친구를 만났다. 고등학교 입학을 위해 도시로 올라가던 중학 동창이었다. 지게를 지고 터벅터벅 울면서 걸어가던 서러운 내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다.

무거운 짐을 지고 숨이 턱에 차도록 언덕길을 오르던 기억, 짐을 부린 다음의 후련하던 순간도 살아난다.

지게를 벗어던지고 마침내 길을 찾아 집을 떠나던, 스물 한 살 내 모습도 함께 떠오른다.

지게는 오랫동안 없어서는 안 될 농기구였지만, 멀지 않아 박물관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물건이 될 것 같다.

모서에서 날이 저문다. 숙소가 없어 상주시까지 버스를 타고 나왔다. 내일 다시 모서에 나가 상주를 향해 걸어갈 예정이다. 오늘도 끄떡없이 잘 걸어준 발님, 감사합니다.

정찬열
도보 국토 종단기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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