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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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 뿌리는 어르신 “여긴 85세 넘어야 노인”

2009-06-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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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구천동

볍씨 뿌리는 어르신 “여긴 85세 넘어야 노인”

농사하는 방법이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

볍씨 뿌리는 어르신 “여긴 85세 넘어야 노인”

조금재 터널을 지나다 만난 길가에 피어 있는 할미꽃 송이들.

땔감 쓰는 재래식 부엌 보니 반가워
학교 통폐합, 스쿨버스가 산골 누벼


국토종단 열 이틀째다.

새벽에 잠이 깼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 꽃밭 같다. 향기 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 하늘도 저렇게 아름다운가… 바로 지척에 개똥벌레가 산다는 무주구천동이 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작은 몸짓 하나가 세상의 빛이 되었던 개똥벌레. 별처럼 초롱초롱 말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제 그런 방식의 사랑은 천연기념물이 되었다


어제 멈췄던 안성 사거리에서 시작한다. 오늘은 토요일. ‘무주 18킬로미터’란 사인이 보인다. 오늘은 무주까지 걷고 부산 조카 집에 내려가 내일 일요일은 거기서 쉴 예정이다.

중년 노인이 인삼밭 지붕을 덮고 있었다.

일년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잘 되면 꽤 괜찮지만, 보통은 인건비 따 먹는 정도”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얼마 정도냐고 다시 물었더니, 인삼밭 500평 정도에 5년근을 키워내면 1,000만원쯤 된다고 한다.

물병에 물을 채우러 길가 농가에 들어갔다. 아주머니가 방문을 반쯤 열더니 몸이 불편하여 떠 드릴 수 없으니 수도꼭지를 틀어 물을 담아가라고 한다. 바로 옆에 부엌이 보이는데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는 재래식 부엌이다.

농촌에도 개스가 보급되어 저런 부엌이 없어진 줄 알았는데, 요즘도 불을 때서 취사를 하는 집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고개를 넘어 적산면에 들어서니 할아버지가 밭에 비료를 뿌리고 있었다. 혼자 걷는 것도 익숙해지다 보니 이젠 사람을 만나면 반갑다.

주름 깊은 할아버지는 등에 플래스틱 통을 짊어지고 있었다. 못 보던 농기구다. 내가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비료를 삼태기에 담아 뿌렸었다.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20년 전의 농촌 풍경을 떠올리느냐며 웃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이를 물었더니 75세 란다. 부부가 6,000평 정도 농사를 짓고 있는데 큰 딸이 달라스에 살고 있어 94년에 미국에 다녀온 적 있다며, 미국에서 왔다고 하니 반가워했다. “할아버지 힘드시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언짢아하신다. “나는 아직 청년이라고, 우리 동네에선 85세는 넘어야 노인 축에 든다”고 농을 건넸다. 올해 92세이신 마을 어른 한 분은 금산 장날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그것도 뒤에 할머니를 싣고 장 마실을 다니는데 나를 노인이라 하느냐고 역정을 내신다.

일손이 부족하지만 농기구가 발달되어 그럭저럭 꾸려나가고, 곁에 세워둔 경운기를 가리키며, 이놈이 장정 열 명도 넘은 분량의 일을 해 준다고 말한다. 사진 한 장 찍자고 하니, 미국 신문에 나가면 딸이 보고 좋아하겠다며 다시 통을 메고 폼을 잡았는데 아니, 이럴 수가. 카메라 배터리가 나가버려 앞모습을 찍을 수가 없다.

무주군 적산면 하유리 박대마을 이기영 어르신, 늘 건강하세요.

냇가에 매 놓은 소 한 마리가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이런 산골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소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던 옛날, 웬만한 농가에서는 소를 길렀다.

소먹일 깔을 베어오거나 냇가에 소를 끌고 와 풀을 뜯기는 일은 아이들 몫이었다. 여럿이 모이면 우리 소가 힘이 세다고 서로 우기다가 소싸움을 붙이는 일도 더러 있었다. 기계로 농사를 짓는 지금은 옛 풍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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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가에 매어 있는 소. 절로 고향의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가만히 다가가니 소가 순한 눈매로 나를 바라본다. 옛날 우리 소를 닮았다. 컴컴한 외양간에서 밤새도록 새김질을 하던 그 녀석. 지금 와 곰곰 되짚어보니 그 때 소가 밤새 씹고 있었던 것은 칠흑 같은 외로움이 아니면, 끊을 수 없는 질긴 슬픔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덕을 내려가니 볍씨 뿌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물망이 깔린 나무틀에 볍씨를 뿌리고 그 위에 잘게 부순 거름을 덮어주는 작업이다. 처음 본다며 사진을 찍으니 언제 적 얘긴데 처음 보았다 하느냐고, 이 나라 사람 아니냐고 묻는다. 미국에서 왔다고, 25년 전에 이민을 갔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조금재 터널을 지났다. 길가 할미꽃 한 송이가 예쁘다. 딸막딸막 농사준비에 모두들 바쁘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풀 메는 아주머니, 삼륜차를 몰고 가는 아저씨, 모터사이클을 타고 가는 젊은 아주머니. 농촌 풍경이 예전과 많이 다르다.

노란 버스 한 대가 지나갔다. 원불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 버스란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데려오고 데려다 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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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줄면서 시골의 학교들은 통폐합을 했다. 그리고 통학버스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학생들을 실어 나른다.

요즘은 초등학교도 한 면에 한 학교 정도로 통폐합을 했고, 통학버스로 아이들을 등하교 시킨단다. 수백명 아이들이 넘쳐나던 시절은 옛이야기가 되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으로 돌아간 사람처럼 낯선 게 많다. 다음은 충북 영동 쪽으로 발길을 돌릴 예정이다.

정찬열
도보 국토 종단기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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