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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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개한 벚꽃과 어우러진 신명나는 민속놀이

2009-04-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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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암 왕인 문화축제를 가다- 정찬열의 도보 국토 종단기 <2>

유기농원 운영 향토 ‘신지식인’ 만나
황토방서 자고 아침엔 생식 ‘힘이 불끈’


일곱 번째 날입니다. 일요일입니다. 매주 일요일은 휴식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궁리하다가 마침 영암군에서 왕인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해서, 쉴 겸 그 곳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한국은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로 각 지역마다 경쟁적으로 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전남지역은 함평군 나비축제, 광주 김치축제, 강진 청자축제를 비롯한 많은 축제가 있습니다.


광주에서 버스를 타고 영암을 내려갔습니다. 영암읍 초입에서 인상적인 풍경 하나를 목격했습니다. 자동차 수리소 건물 지붕 위로 벚나무 둥치 두개가 솟아 있습니다. 집을 지을 때 나무를 차마 베어내지 못하고 살려 놓은 채 집을 지은 것입니다.

까짓 나무 한 그루쯤 싹둑 잘라내고 편리할 대로 집을 지을 수 있었을 텐데 저렇게 집을 지은 사람은 어떤 분일까. 가지마다 꽃을 피워 지붕을 환히 밝혀놓은 벚꽃 나무를 바라보며 나무 목숨을 사람 생명인양 소중히 여기는 저 집 소유주는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어집니다.

눈을 들어보니 월출산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 강산이 아름다우면 그 속에 사는 사람도 산천 따라 선하고 아름다워지는 모양입니다.

왕인축제에 가는 차량이 영암읍에서 축제장소인 구림리까지 줄을 서 있습니다. 활짝 핀 벚꽃으로 꽃 터널을 이루고 있는 이 길을 사람들은 백리 꽃길이라 부릅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난분분이 흩날리는 꽃애파리가 수만 마리 나비가 되어 장관을 이룹니다.

축제장엔 신명이 넘쳐나고, 사람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합니다. 왕인 문화축제는 일본에 문자를 전해준 이 지방 출신 왕인 박사를 기리기 위한 축제입니다. 해마다 벚꽃이 만개할 무렵 열리는 이 축제는 왕인 박사 고유제로 시작하여 전국 민속예술제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던 갈곡 들소리 같은 민속놀이의 재현, 군민들의 화합과 단합을 위한 여러 종류의 행사가 펼쳐집니다.

왕인 박사의 묘가 있는 일본 히라가다시에서는 이 행사에 해마다 사절단을 보냅니다. 입시 철이면 학생들이 왕인사당에 가서 공을 들일만큼 그 지방에서는 왕인을 학문의 신으로 추앙하고 있다고 합니다.

‘산천을 만나고, 사람도 만나며’ 종단하겠다는 생각에 따라, 이 지역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유기농원 대표 정동열·고효숙씨 부부를 찾았습니다.


33년 전, 1만2,000평의 야산을 개간하여 단감, 석류 등, 유실수를 키우기 시작하여, 화학비료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 퇴비를 만들어 유기농업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생산된 과일로 식초를 만들어 보급하고, 생식을 25년 넘게 몸소 실천하면서, 그 좋은 점을 인근에 알리면서 생식 전도사로 살고 있는 부부이기도 합니다.

황토 집을 지어 자연친화적인 삶을 살고 있는 이들 부부의 생활을 본받아 많은 사람들이 황토방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훨씬 이전부터 앞장서 웰빙을 실천해 온 분들입니다. 오랜 세월 함께 흙을 일구며 살아온 이들 부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면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황토로 만든 방에서 잠을 자고, 이 댁에서 먹는 것처럼 아침을 생식으로 대접 받았습니다. 꿀 한 숟가락에 잣 한 스푼, 녹즙 한 잔과 과일로 아침을 때웠습니다. 예측과는 달리 점심시간까지 배가 든든하여 생식도 습관이 되면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장서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 누구에게 희망이 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즐겁습니다. 정부에서도 이런 사람들을 선정하여 신지식인, 명장, 무형문화제 등의 이름을 붙여 이들을 대접해 주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이 많이 달라졌고, 달라져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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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 출신으로 일본에 문자를 전해 준 왕인 박사를 기리기 위해 매년 열리는 ‘영암 왕인 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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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참가자들이 왕인 박사가 활동하던 시기의 복장으로 분장을 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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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 인근에 끝없이 펼쳐진 마늘밭. 옛날에는 보리 밭이었지만, 지금은 수익성 때문에 마늘을 많이 재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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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군 선정 신지식인 정동열·고효숙씨 부부와 필자(왼쪽에서 두번째)가 정씨 소유인 유기농원을 돌아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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