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신체와 일할 뜻만 있다면 미국에서 가난할 이유가 없다. 주류사회의 위치까지 접근하기는 쉽지 않아도 나름대로 생계를 유지하고 아이들을 교육시키며 살아갈 수는 있다. 일할 의사가 있어 일을 한다면 수입도 괜찮고 사회보장도 어느 정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물불 안 가리고 돈이 되는 일을 좇지는 않는다. 가난한 것도 싫어하지만 더러운 부도 정말 싫어한다. 더럽게 돈을 벌면 반드시 희생자가 따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까지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내 의뢰인과 거래 상대방에게 이익이 된다는 믿음으로 거래를 주선해왔다. 내 자신이 확신하지 못하는 물건을 손님에게 권유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뉴스타부동산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던 1991년 1월이었다. LA에서 동쪽으로 70마일 정도 떨어진 아델란토(Adelanto)란 곳에 부동산 시장에서 이른바 ‘노다지’가 터졌다. LA에서 라스베가스까지 가는 길의 3분의 1정도 되는 지점에 위치한 지역으로 당시 그곳에 대한 개발 청사진이 발표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델란토에 LA와 라스베가스를 연결하는 초고속 전철의 중간 역이 들어서고 미국과 아시아를 잇는 초음속 여객기들이 주로 이용하는 국제공항이 들어선다는 꿈같은 지역개발 프로젝트였다. 이때 한인사회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바람을 잡았다.
고속전철이 내일 당장이라도 들어올 것처럼 선전하고, ‘지금 아델란토에 투자하지 않으면 중요한 기회를 놓친다’고 분위기를 몰아간 것이다. 광대한 사막의 버려진 땅이었던 곳이 하루가 멀다 하고 값이 뛰었다. 계획이 발표될 당시 에이커당 1달러 하던 땅이 불과 3개월여 만에 에이커당 40달러로 치솟았다. 광풍(狂風)이었고 너나 할 것 없이 노다지를 캐기 위해 달려들었다. 한인사회 여유자금의 거의 대부분이 그곳에 몰렸다고 보아도 틀린 얘기가 아니었다. 빚을 내거나 사업체를 저당 잡혀서까지 투기의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다. 모두가 ‘예’라고 할 때 혼자 ‘아니다’ 하는 배짱이 아니라, 그것이 정말 돈이 되는 투자인지 확신이 안 섰기 때문이었다. 유망지라는 소문이 도는 그곳을 꼼꼼히 살펴 보았지만 비관적이었다. 그곳을 개발하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적자재정으로 고민이 많은데 그곳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어 계획을 실현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게다가 주류 미국인들의 투자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빈 땅들은 대개 한국인들끼리 샀다 팔았다 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주에 10개 이상이 팔렸습니다.” 하면 8개가 한국인이 아니면 중국인의 이름이다.
광풍이 불었기 때문이겠지만 일부에서는 부자가 되겠다는 일념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빈 땅을 사달라고 요구하는 고객들을 최대한으로 만류했다. 그때 오랜 고객들이 나를 떠났지만 내 확신이 서지 않는 거래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내 예상대로 아델란토 땅의 거품은 곧 걷히기 시작했다. 붐이 일기 시작한 지 불과 4개월여 만에 ‘고속전철 개발 무기한 연기’라는 정부의 발표가 난 것이다. 40달러까지 올랐던 땅값이 발표 이후 급락하기 시작했다. 이젠 투매현상이 일어나 하룻밤 사이에 가격이 절반씩 떨어졌다.
그때 많은 한인들이 파산했다. 많은 사람들이 착실하게 모았던 돈을 하루아침에 날린 꼴이 된 것이다. 당시 더 많은 투자자들을 말리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한편으로는 분위기에 휩쓸려 땅장사를 하지 않은 나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그 당시 나라고 왜 돈을 벌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때 내가 ‘땅장사’에 뛰어들었다면 상당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방법이나 절차도 합법적이어서 문제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합법적’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고객을 상대로 부도덕한 짓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중개업자인 나 스스로 확신하지 못하면서 고객으로 하여금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하도록 이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에서의 부동산 투자는 반드시 안전한 곳, 즉 도시와 가까운 곳에 하는 것이 원칙이다. 먼 사막의 입구나 개발되지도 않은 산 중턱 등에 땅을 사는 것은 도박이며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어쨌든 그때 내가 ‘아델란토의 광풍’ 대열에 합류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의 뉴스타그룹으로 회사를 키울 수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뉴스타그룹의 에이전트들에게 지금도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것은 자기관리와 윤리의식이다. 내 첫 직장이었던 한국의 은행에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 있다. “돈이 돈으로 보이면 은행을 그만두라!”는 것이다.
돈만 다루는 은행에서는 돈을 종이로 봐야지, 그것이 돈처럼 느껴지면 고객들이 맡긴 돈에 손이 갈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우리 그룹의 직원들에게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고객보다 돈이 먼저 보이면 부동산업을 그만두라!”
부동산 거래는 보통 평생에 몇 번 하지 않는, 일생에서 가장 큰 거래다. 여기엔 고객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가족의 꿈과 미래가 걸려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고객보다 커미션을 먼저 생각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면 자명해진다. 윤리의식이 그래서 필요하다. 잘못되면 에이전트 본인의 인생을 망치게 되고, 크게는 뉴스타그룹이라는 회사 전체의 이미지나 크레딧을 망치게 되며, 더 크게는 온 우주를 다 줘도 살 수 없는 사람들의 귀한 인생을 망치게 된다. 청빈(淸貧)도 싫지만 탁부(濁富)도 나는 싫다. 평생 동안 내가 지켜오고 있는 원칙 가운데 하나다.
남문기
<뉴스타 부동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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