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스콥 픽 (Telescope Peak, Death Valley N.P.)
출발점인 마호가니 플랫의 사인판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산행에 올랐다. 금세 왼편 마호가니 나무들 사이로 호수 같이 넓은 소금 벌판이 보인다.
미주에서 가장 낮은 이 지역은 해저 282피트(-85m) 라고 기록되어 있다. 물이 항상 있지만 소금기가 있어 배드 워터(Bad Water)라고 별명이 지어졌다.
1849년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들어선 포티나이너스(49ers)는 하늘을 찌르는 시에라네바다 산맥을 가로지를 엄두가 나지 않아 남쪽 데스밸리를 통과하게 된다. 실제 이름과 달리 예부터 인디언이 살았고 겨울철에도 물과 얼음이 있어 데스밸리를 지나다 죽은 사람은 없다고 한다.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산 아래로 소금밭과 아름다운 곡선의 구릉이 어우러져 전혀 새로운 경치가 나타난다. 앞쪽으로 자세히 보니 눈이 조금 쌓인 봉우리가 보인다. 인근에서 제일 높은 듯하니 저곳이 정상 인가보다. 일단 목표가 시야에 들어오니 발걸음도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다.
약 2마일을 더 등정하니 산등성 반대편으로 반듯한 길이 나있다. 반대편 경치는 더 훌륭하다. 멀리 미국 본토 최고봉 위트니 산이 있는 하이시에라 산맥이 가장 낮은 이곳 지형과 조화를 이루려는 듯 아름답게 펼쳐진다.
길은 편한데 불어 닥치는 찬바람이 보통이 아니다. 빙점에 가까운 온도인데 약 1만피트에서 불어 닥치는 바람은 취약한 얼굴과 손을 금방 얼게 한다. 더운 곳이라는 생각으로 장갑을 지참하지 않은 것이 후회막급이다. 모자가 날아갈 것 같아 눌러쓰며 걷는데 어린 시절 한국의 겨울날 손을 호호 불며 밖에서 다니던 때가 생각이 난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제법 숨이 차오르는 경사로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포즈를 취한 산악회원들.
드디어 정상 밑자락에 도착했는데 스위치백을 따라 선두팀이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잠시 숨을 돌리고 뒤돌아서니 펼쳐지는 풍치가 가히 절경이다. 동료가 건네준 캔디바를 한개 얻어 먹으니 힘이 재충전되는 듯하다. 우리를 앞서 간 등산객들을 보지 못했으나 하산 길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이곳이 유명한 등산로로구나 느끼게 되었다.
정상에 도착해 보니, 볼디처럼 돌무더기 울타리를 쌓아 놓았으나 매서운 바람은 더욱 매몰차다. 서둘러 사진을 몇 컷 찍고 하산하다보니 올라올 때와 사뭇 다른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오래 전 이곳을 건너오던 서부개척 이민자들이 이곳 데스밸리를 통과했으나 패스(Pass)로 알려진 산 고개들을 오르다가 절명한 기록들이 떠오른다. 산과 사막은 말없이 그저 아득히 펼쳐지고 자동차 길도 실타래처럼 가늘게 늘어져 있다.
하산 길 적당한 곳에 점심 식탁을 차렸는데, 푸짐한 반찬과 먹거리의 점심은 우리 산악회의 자랑거리임에 분명하다. 식사를 마친 후 하산을 하니 오후 2시께가 되었고 산을 내려오면서 차콜 클라인의 숯가마를 구경하고 하루 일정을 마치게 되었다.
LA에서 약 4시간 반, 250마일의 거리인데 운전하는 것이 지루하지 않은 것은 흔히 접하지 않았던 데스밸리의 장엄하면서도 새로운 경관을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시생활에서 벗어나 대자연의 품속에 안겨 본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 잠자리가 불편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것을 체험하는 원정 산행이야말로 생활의 활력소를 더해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가는 길: LA에서 5 Fwy North-14 Fwy 로 가다가 178 Fwy로 갈아타서 데스밸리 국립공원에 들어선 후 약 50마일을 운전하면 와일드 로즈 캠핑장으로 들어선다. 등산로는 여기서 산속으로 약 9마일 거리인데 도중에 톤다이크(Thorndike)캠핑장과 마호가니(Mahogany) 캠프장이 있다. 후반부 약 4마일은 비포장도로이므로 4×4차량이 유용하다.
<자료제공: 김인호 산악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