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택시장 몰락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이던 집세(렌트)가 마침내 하락세를 보이면서 집세를 깎아달라는 재계약 요구가 속출하는 등 세입자들의 파워가 강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집주인들은 집세를 인하해주거나 설비·체육관 무료 이용 등의 다른 혜택을 주는 등 집세를 연체하지 않는 ‘우량’ 세입자를 확보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포함한 미국의 많은 주요 도시에서 집세가 하락하면서 세입자들이 재계약을 요구할 여지가 커지는 등 ‘세입자 주도의 시장’이 됐다고 보도했다.
뉴욕 소재 부동산 리서치 업체인 레이스에 따르면 작년 4·4분기 미국 전국의 아파트 집세는 3·4분기보다 0.4% 떨어져 지난 2003년 이후 5년 만에 첫 하락세를 기록했다.
반면 아파트의 공실률은 6.6%에 달해 1년 전 같은 기간의 5.7%보다 0.9%포인트나 급등했다.
주택시장 위기의 초반에만 해도 주택을 압류당한 사람들이 소유권을 빼앗긴 집에 집세를 내면서 계속 살려는 수요가 늘면서 주택가격은 하락해도 집세는 떨어지지 않는 현상이 한동안 지속됐었다.
하지만, 신축 콘도 등 시장에 신규 물량이 늘어나면서 이제 집주인들은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는 상황이 됐다.
주요 도시의 상황은 특히 심각하다.
부동산중개업체 REG에 따르면 맨해튼의 경우 지난해 모든 종류의 아파트 집세가 떨어졌다. 스튜디오 형태의 아파트는 7.4%, 방 1개짜리와 방 2개짜리는 각각 5.5%, 5.6%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마이애미는 작년 4분기에 60%가 떨어졌고 로스앤젤레스는 45%가 하락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집주인에게 집세를 인하해 달라고 요구하는 세입자가 속출하고 있다.
뉴욕 미드타운에서 월 4천700달러짜리 아파트에 사는 리처드 래어머는 올해 자신이 운영하는 PR업체의 실적이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자 집주인에게 집세 인하를 요구해 결국 집세를 월 200달러나 깎는 데 성공했다.
주택 공실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세입자가 이주하면 또 다른 세입자를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집주인 입장에서는 집을 비워두는 것보다 차라리 집세를 다소 인하해주더라도 집세를 연체하지 않고 꼬박꼬박 잘 내는 세입자를 잡아두는 것이 유리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일부 아파트 건물들은 집세 인하 외에도 상품권 제공이나 무료 설비, 수영장·체육관 사용 등의 혜택을 제공하면서 ‘세입자 모시기’ 경쟁에 나서고 있다.
REG의 대니얼 범 최고경영자(CEO)는 높은 월세를 유지할 만큼 일자리가 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주택소유주들이 깨닫고 있으며 그들은 가격에 대해 더욱 현실적이 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
김지훈 특파원
hoon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