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중반만 하더라도 해적 하면 영화나 소설 속에서 나오는 외눈깔의 괴한들을 연상시키는 역사적 악몽들 정도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달 15일 소말리아의 해적들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형 유조선인 ‘Sirius Star’(천랑성: 天狼星) 호를 납치한데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해적들의 발호는 20세기말과 20세기 초의 지구촌을 괴롭히는 난제로 등장했다.
20세기 말엽부터 동남아나 인도양에 해적들의 출몰이 있기는 했지만 전 세계적인 문제로 등장한 것은 소말리아의 군사독재정부가 무너지면서 군벌들이 지배하는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어온 1991년 이후라고 볼 수 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소말리아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미군을 투입했다가 미군 병사들이 사살된 후 트럭 뒤에 질질 끌려 다니는 참혹 그 자체의 영상 때문에 미국마저 손을 뗀 상황이라 인구 전체의 10분의 1 가량이 되는 100만 명 이상이 생명을 잃은 것으로 추산되는 불쌍한 나라다. 무정부 상태 아래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어 1인당 총생산(GDP)이 600달러에 못 미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 환경이 해적들을 산출한다는 분석이다.
실직해서 먹고살기가 막막한 선원들이나 어부들, 또 전역한 군인들로서 무기 사용에 능한 자들, 그리고 위성항법장치(GPS)와 통신기계를 사용하는 기술자들이 한패가 되어 해적질을 한다는 것이다. AK-47 소총, 경기관총이나 로켓포 등으로 무장한 쾌속정으로 나포할 화물선을 고른 다음 10명쯤이 탄 쾌속정 셋이 나타나 소말리아 해변으로 따라오지 않으면 격파한다고 위협하여 승선한 다음 배를 납치한다는 것이다.
천랑성호의 경우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유 1일 생산량의 4분의 1이 넘는 200만 배럴의 원유를 운반하던 배로서 항공모함보다 3배가 큰 유조선이기 때문에 석방조건으로 해적들이 무려 2,500만 달러를 요구하고 있다는 보도다. 선박회사들로 보면 대속물을 주지 않는 경우 선원들이 죽게 되거나 엄청난 가치의 화물을 잃게 될 위험성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협상에 응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국제해사 당국에 의하면 금년 들어 소말리아 해안에서 92건의 해적 공격이 있었는데 그 중 39척의 선박들이 납치되었단다. 현재 14척의 선박들과 243명의 선원들이 해적들의 손아귀 아래 있다는 것이다. 해적들은 배 크기와 선원 수에 따라 적으면 1만 달러에서 200만 달러까지 대속금을 받는데 영국의 한 연구기관에 따르면 10월까지 해적들이 갈취한 돈 액수가 무려 3,000만 달러나 된다는 것이다.
작년인지 그 전해인지 한국 화물선도 나포되었다가 풀린 일이 있었지만 8월10일에는 한국 선원 8명이 탄 한국 화물선이 납치되었고, 11월15일 천랑성호 납치에 뒤따라 납치된 일본 화물선에도 5명의 한인 선원들이 타고 있다는 보도이다.
11월18일에는 그리스 화물선, 태국 어선, 그리고 이란 화물선이 차례로 납치되어 해적들의 난동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아덴만이 위험해서 배들이 그곳을 피해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항해하는 등 해적들이 끼치는 피해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의 제5 함대의 배들이나 나토 맹방의 배들이 여기저기 순항하지만 문자 그대로 망망대해라 해적들의 발호를 근절하기에는 역부족인 모양이다.
아무리 가난해서 고생이 되더라도 남의 것을 강탈하거나 훔치는 것은 삼가는 인성교육이나 이웃에게 선을 행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종교적인 자기 절제가 없는 사회에서, 더군다나 17년의 내전으로 피흘림의 폭력이 항다반사처럼 여겨지는 무정부 상태 아래 소말리아 현대판 해적 문제의 해결책이 어려워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