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탐욕과 과욕의 광란

2008-10-09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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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만춘 전 상록회 회장

금융구제법이 상하 양원에서 통과되었다. 대통령이 즉각 서명함으로써 금융공황의 마지막 국면에서 겨우 금융시장의 소생이 가능해보인다. 물론 이 법은 최선책은 아니라고 본다. 어떻게 보면 필요악에 불과하다. 7,0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가지고 정부가 부실 모기지를 규제와 감독을 통해서 타개해보자는데 목적을 둔 것 같다. 미국의 금융질서는 미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 세계의 금융질서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그냥 지나갈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한 면에서 끝까지 이번 법안을 반대한 의원들은 거시적인 세계 금융질서를 내다보지 못한 우를 범했다고 본다.
그러면 왜 이러한 금융시장의 공황을 초래하게 되었나. 벌써 오래 전에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부동산 시장에 버블 상황이 올 것이라는 예견을 한 것을 듣고 있다. 그리고 이미 과거 1990년대 일본과 스웨덴 같은 나라들이 겪은 역사적인 전례들이 있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거품 경제로 인해 금융시장, 부동산시장이 대란을 경험했다. 들판에 골프장 예정지라고 간판만 세워놓아도 금융시장에서 얼마든지 돈을 빌릴 수가 있었다. 이러한 부실대출이 경쟁적으로 팽창해나갔다. 부동산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고 나중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되니까 많은 은행이 도산하고 금융시장의 큰 혼란을 피할 길이 없었다. 부동산 값은 곤두박질했다. 필자가 그 당시 일본에 있었는데 친구 한 사람이 도쿄 신주쿠에 6,000만 엔을 주고 산 맨션(콘도)이 버블이 무너지면서 3,000만 엔으로 내놔도 살 작자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았다. 이 사태를 수습하느라고 일본 정부는 공적자금을 막대하게 퍼부었다. 그러면서도 약 10년 이상을 경제성장 제로를 지속했다. 스웨덴도 이와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 그러나 스웨덴 정부는 과감하고 신속하게 금융공황에 대처했다. 소위 ‘스톡홀름 솔루션’이라는 적극적인 시책을 채택함으로써 비교적 빠르게 수습을 했다. 그러나 1970년대 국민소득 세계 1위 자리를 다른 나라에 내주는 수모를 지금도 겪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교훈이 있으면서도 왜 사전에 오늘과 같은 사태를 예방할 수 없었느냐는 것이 의문이다. 공화당 정부가 집권하면서 내세운 슬로건이 작은 정부, 적은 지출, 적은 세금, 적은 규제 들이었다. 최근까지 사회보장 연금(Social Security Benefit)과 의료보험(Medicare)의 관리운영까지도 민영화(Privatization)하자는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 만일 민영화된 후에 이번과 같은 금융공황이 일어났다고 하면 그야말로 국가 파산의 운명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번 사태로 공화당 정부가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는 대혁신을 해야 할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고 본다. 자본주의 시장의 끝없는 탐욕과 분수없이 이득 추구에 이성을 상실한 일부 부동산 소비자들의 과욕이 맞물려서 부실경제의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의 윤리성과 도덕성을 신뢰한다는 말은 나이브(Naive) 하게 들릴 뿐이다. 이러한 공화당 정부의 금융정책 구조를 외면하면서 이번에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 새라 페일린 후보가 얼마 전 후보자 토론에서 월가의 금융업자들을 부패한 탐욕의 집단이라고 맹공을 하는 것을 보고 아이러니컬하게 느꼈다. 그러면서도 이번 구제금융 법안에 반대한 공화당 일부 의원들은 금융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정부 개입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는 극약처방으로 벌써 페니 매와 프레디 맥에 공적자금을 2,000억 달러 투입했고, AIG 보험회사 구제금융으로 750억 달러, 이제 7,0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다시 부실금융 구제자금으로 지원하려고 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철저히 감독하고 규제하려는 것 같다. 시기가 좀 늦기는 하나 지금부터라도 시장경제주의(Market Oriented Approach)의 새로운 틀을 잘 짜서 합리적인 수정 시장경제주의 혁신적인 모델을 도입해서 국가 백년대계를 세워야 하겠다. 시장경제의 최대 자율화는 더 이상 논할 가치가 없게 되었다. 하루속히 사태를 수습하고 그 동안 미국이 실추한 경제대국의 신뢰를 되찾아야 하겠다.
미국 정부가 지고 있는 부채가 무려 9조6,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번에 구제금융으로 지원하겠다는 액수만도 거의 1조 달러에 가깝다. 앞으로 또 얼마의 구제금융이 더 요구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당분간 미국 국민은 미국 경제의 재건을 위하여 험난한 길을 참고 가야될 줄 안다. 애국심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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