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책을 만들지만,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사람과 책의 통섭(通涉)이다. 시대와 사람도 그러하다. 사람이 시대를, 시대가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상호 통섭이다. 오늘날 기후위기의 시대는 우리에게 이전과 다른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요구되는 삶의 방식이나 보편적 인간상은 무엇일까?
시대는 그 시대를 의미롭게 살아내는 보편적 인간상 나아가 이상적 인간상을 요구한다. 예수는 사랑의 사람을, 부처는 보살행을, 공자는 군자(君子)의 삶을, 소크라테스는 철인(哲人)의 삶을, 니체는 위버멘쉬( Übermensch) 인간상을 제시하였다.
기후위기 시대 지구촌 재난 현장에서 들려오는 거칠고 사나운 비바람 소리, 산불의 맹렬한 소리, 고통받는 동식물의 신음 소리, 숨져가는 피해자들의 비명 소리를 듣는다.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애절하고 엄중한 외침들이다.
그럼에도 쉽사리 변하려 하지 않는다. 촌각을 다투어야 할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마치‘솥 안에서 미지근함을 즐기는 솥 안의 개구리(The Frog In the Kettle)처럼’변화의 요구에 무덤덤하다. 우리는 변해야 한다. 시대의 요구에 대응하지 못하고 무감(無感)하거나 무심히 있다가는 ‘미지근한 즐거움을 즐기는’어리석은 개구리처럼 될 수 있다.
기후위기 시대, 개인도 국가도 변해야 한다. 변화는 자연의 존재방식이요 우리 삶의 존재방식이기도하다. 궁하면 변하고(窮則變), 변하면 통하고(變則通), 통하면 오래간다(通則久). 그러나 기후재앙 현실을 마주하고도, 기후위기 이전에 비하여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적 공조 노력도 실망스럽다.
지난 11월 113개 나라가 참가한 가운데 브라질 벨렝(Belém)에서 열렸던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가 막을 내렸다. 올해는 파리협정 채택 10주년이 되는 해로 주목을 받았지만, 기후위기에 공동 대응하자는 원론적 의미를 담은 ‘무치랑 결정문’(Mutirão-공동협력을 뜻하는 브라질 토착어)을 내는 것으로 끝났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은 회의에서 침묵했고, 미국은 아예 회의에 대표단조차 보내지 않았다. 변화의 요구에 미온적이다.
인간의 삶의 방식을 바꾸라는 시대의 요청에, 왜 우리는 무덤덤할까? 아름다운 초록 지구별에 사는 모든 촌민(村民)과 자연의 생명을 위하여, 긴밀하게 국제협력을 하라는 시대의 절박한 요구에 왜 나라들은 미온적일까? 그것은 책임의식 곧 책임감의 결여나 망각에서 오는 것일지 싶다. 책임감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결과를 스스로 지겠다는 자기를 내 놓는 마음이며, 다른 이들을 나와 이어져 있는 존재로 여김에서 나오는, 다른 이를 알아주고 안아주는 마음이다. 책임감은 하늘로부터 받은 사람다움의 밑바탕이다.
진지한 책임감은 어디서 나오는가? 나와 너, 사람과 자연이 서로 하나라는‘만물여아일체(萬物與我一體)’마음 곧 우리는 서로 이어져 있는 존재라는 자각에서 나온다. 굳이 불교의 연기론(緣起論)을 들지 않아도, 미국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의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 이론을 들지 않아도, 지구촌에서 우리는 서로 이어져 있음을 안다.
우리가 배출한 온실가스가 지구촌 건너편 많은 사망자를 낸 사나운 폭우나 거친 태풍에 극히 미세하지만 에너지를 더했을 수도 있다. 진작 국가들이 지구적 대책을 세웠었다면… 미온적 대책으로 입지 않을 피해를 당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비록 일면식은 없었을 지라도, 한 하늘 아래 함께 생명을 누리던‘서로 이어져 있는 소중한 존재’의 갑작스런 죽음과 피해에 무심할 수 없다. 그들이 우리요, 저 일이 우리 일이다. 깊은 책임감이 든다. 우리의 책임이다.
자신과 무관하다고 여기면 책임감이 나오지 않는다. 한 시인은 <비스듬히>라는 시에 쉽고 아름답게 책임감에 대한 통찰을 담았다.“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정현종) 서로 기대어 존재하는 사람 인(人)자가 떠오른다.
책임감은 멀리 있지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비스듬히 기대어 살아가야 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마음이 책임감이다. 책임감, 기후위기 시대 ‘사람다움’을 지닌 보편적 인간상으로 다시 회복되어야 할 마음이다. 책임감, 모두와 비스듬히 기대어 더불어 살게하며, 기후위기를 이겨낼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맡겨주신 하늘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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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