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고난과 함께 춤을

2008-05-2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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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있다.
과연 이 비를 봄비, 아니면 여름비로 생각해야 할까 하며 한가로움을 즐기고 있다.
많은 토끼 품종을 알지는 못하지만 이 세상에서 아니, 지금껏 보아온 토끼 중에서 가장 작은 것으로 생각되는 아주 조그마한 토끼가 잔디 위에서 노닐고 있다. 내 기억 중에 예쁘고 사랑스러운 것으로 입력이 된 토끼, 그것도 내 손 크기와도 같은 토끼를 보자니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아이구, 귀여워라!”
처음에는 한 마리뿐이었는데 안전지대라고 느껴졌는지 또 다른 토끼를 데리고 와서 논다. 마치 휘장처럼 생각될, 신록이 짙어만 가는 나무가 그 그림을 받쳐주고 있다. 한 마리뿐일 때는 가슴에 감격이 생겼었는데 그 숫자가 많아지니 시큰둥해진다.
지금까지도 나는 현재의 상황이 고난일까 하는 것으로 심각한 고민(?)을 한다. 가끔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초연한 자세를 보일 때도 있어서 드디어 뻔뻔함이 모습을 내보이는 듯해서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말이다.
사고 후유증으로 시력에 문제가 발생되었고, 또 그렇지 않아도 나이 탓으로 쇠잔해가는 육신에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르는 중에 있다. 그런데도 나는 무엇인가를 읽는 것을 즐긴다.
세계 최고의 베스트셀러(?)인 성경을 읽노라니 시험은, 능히 이겨낼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감격 중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하나님께서 나를 후하게 평가해주신 때문이다. 그래서 내 마음에 도전하는, 무엇인가 해보고자 하는 열정이 생겨났다. 어쩌면 ‘밀알’에 속해지면서 장애를 딛고 삶을 알차게 꾸미는 사람들에게서 도전을 받은 것이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우리 인간이란 끊임없는 노력으로 도태되지 않을 삶을 누려야 한다. 이 세상의 사람들을 일렬로 줄을 세워 숫자를 센다고 가정을 해보자. 각 사람에게는 사정이 있는 것이고, 핑계도 참 많을 것이다. 그런 탓으로 지구상에서 지내는 사람들의 통계를 낸다는 것은 참 어렵다. 그런데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숫자는 파악되고 있다. 물론 정확하지는 못해도 근사값으로 통계를 내는 것이다. 이 수많은 사람이 모두 안녕하게 지낸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이 드니까 내가 겪는 악한 상황, 그러니까 고난에 관한 여유가 생겼다.
사고 전에 나는 참으로 많이 거리를 쏘다녔다. 내 밥줄이 사무실에 얌전히 앉아 사무를 보면 월급을 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평생에 걸어야할 것을 모두 걸었기에 현재 나는 걸을 필요가 없다는 듯 안 걷는다. 가끔 엉덩이와 동고동락을 하는 휠체어가 엉덩이에서 멀어져도 나는 기를 쓰고 걷지 않는다.
나는 시간이 억수로 많기 때문에 추억 속에 종종 잠긴다. 물론 성장을 하고서는 시내인 종로와 을지로, 그리고 여의도를 자주 다녔지만, 어릴 때 내가 자란 곳이 부촌이 아니어서 좁다란 골목길에서 주로 놀았었다. 만약 어릴 때 내가 걷지 못할 상황을 겪게 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며 우습게도 지금 만난 고난에 차라리 감사가 느껴졌다.
조그마한 토끼들이 제 세상인양 쫓고 쫓기고 할 때 뿌리던 빗방울이 지금은 빗줄기로 변했다. 궁상과 주접이 합해진 낭만으로 비를 맞으며 걷기를 즐겨했었는데 지금은 그저 바라보면서 비를 맞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 넘버원인 음악을 여한 없이 들으라고 누가 CD를 18장 녹음해서 보내왔다. 현재의 내 형편이 고난인가, 아닌가를 심각하게 생각하다가 여러 장의 CD를 보니 내가 맞은 고난과 음률에 맞추어 춤을 추고 싶어졌다.

김부순
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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