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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배우가 웬 흑인 노릇”

2008-03-2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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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 배우가 웬 흑인 노릇”

액션 코미디 ‘열대 천둥’의 세 주인공. 왼쪽부터 잭 블랙, 흑인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벤 스틸러.

베트남전 액션 코미디 ‘열대 천둥’
피부염색 출연 로버트 다우니 Jr. 비판

과거엔 다반사…“흑인 비하 아니다”반론

패라마운트가 오는 여름시장의 대목을 노리고 8월15일에 개봉하는 베트남전 액션 코미디 ‘열대 천둥’(Tropic Thunder)의 주인공 중 한 명인 흑인 군인 역을 백인인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맡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사실을 연예주간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먼저 보도하자 뉴욕타임스 등 다른 매체들이 새삼 백인의 흑인 역을 놓고 논평을 하고 있다.
21세기판 ‘지옥의 묵시록’이라 불리는 ‘열대 천둥’은 코미디언 벤 스틸러가 각본을 쓰고 연출과 함께 주연도 맡았다. 또 다른 중요한 출연자는 역시 코미디언인 잭 블랙.
영화에서 다우니 주니어는 오스카상을 탄 콧대 높은 배우로서 하사관 커크 레이자러스로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각본에서 당초 레이자러스의 역이었던 하사관 오시리스가 흑인이라는 점. 그래서 레이자러스는 피부에 검은 염색을 하고 오시리스로 나오게 된 것이다.
한편 다우니 주니어의 흑인 노릇에 대한 비판이 일자 스틸러는 “이 영화는 흑인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다루기 힘든 할리웃 스타들을 풍자하고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영화에서 스틸러는 이제 막 아시아로부터 아기를 입양한 액션 스타로 그리고 블랙은 한 영화에서 1인 다역을 하는 코미디언으로 나와 다우니 주니어와 함께 ‘열대 천둥’에 발탁돼 정글에서 촬영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들 셋이 너무나 오만방자하게 굴자 영화의 감독(스티브 쿠간)과 각본가(닉 놀티)가 세 배우를 정글에 남겨 놓고 철수해 버린다. 세 배우는 자기들이 버림받은 줄도 모르고 그것을 영화의 내용으로 여기고 연기를 하면서 진짜로 위험한 지경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영화에는 탐 크루즈와 토비 맥과이어가 캐미오로 나온다.
영화에 대한 비판에 관해 다우니 주니어는 “내가 맡은 역을 제대로 하면 훌륭한 배우라는 소리를 듣겠지만 잘못 했다가는 낭패한 지경에 빠지게 될 줄을 잘 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전심전력을 다해 내 역을 연기하고 있다”면서 “도덕적으로 건전치 못하다고 생각했다면 역을 맡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할리웃에서 백인 배우들이 흑인 노릇을 한 것은 영화 초창기부터 비롯됐다. 무성영화의 걸작으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번개로 쓴 걸작’이라고 칭찬한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1915)에 나오는 모든 주요 흑인 역은 다 백인 배우들이 맡아했다.
또 최초의 유성영화인 ‘재즈 가수’(The Jazz Singer·1927)에서 백인 배우이자 가수인 알 졸슨은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무대에서 노래 불렀다.
백인 배우의 흑인 역은 진지한 드라마보다 뮤지컬에서 많았는데 1930년대에는 빙 크로스비와 주디 갈랜드도 흑인으로 나왔었다. 백인 피부를 지닌 흑인이 극중 주인공들로 나오는 대표적인 두 영화가 ‘핑키’(Pinky·1949)와 ‘인생의 모방’(Imitation of Life·1959)이다.
‘핑키’는 백인 행세를 하던 젊은 흑인 여인(진 크레인)이 남부의 고향으로 돌아와 자기 정체를 찾는 인종 드라마다.
‘인생의 모방’에서는 자기 어머니가 흑인인 것을 숨기고 백인 행세를 하던 젊은 여인(수전 코너)이 뒤늦게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속죄의 오열을 한다. 또 요즘 NBC-TV의 심야프로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를 보면 반 흑인인 오바마 역을 백인 배우가 하고 있다.
과거에는 백인 배우들이 흑인 역뿐 아니라 아메리칸 인디언과 동양인 역까지 다 말아먹었었다. 버트 랭카스터, 찰스 브론슨, 록 허드슨, 제프 챈들러, 척 코너스 등이 모두 인디언 노릇 해 본 배우들.
펄 벅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대지’(The Good Earth·1937)에서는 중국인 농부 부부 역으로 각기 폴 뮤니와 루이즈 레이너가 나왔는데 레이너는 이 역으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탔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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