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단일기/ 송일란(SV한국학교 교사)

2008-03-21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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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환 의사를 기리며

먼 산이 연녹색이다. 흰색, 노란색, 붉은 색, 보라색...온갖 색깔의 꽃으로 세상은 온통 축제 분위기이다. 겨울을 이겨내고 소생했다고 여기저기 펑펑 불꽃놀이를 하듯 꽃들이 피어난다. 총천연색의 꽃들과 생기 가득한 산을 보며 운전을 하다가 문득 장인환 의사가 생각이 났다.

이렇게 좋은 날에 죽음을 각오하고 총을 품고 샌프란시스코 항구를 향해 결연한 발걸음을 내딛었을 그분을 생각하니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싶다.


1908년 3월 23일, 100년 전 그날은 장인환 의사가 스티븐스를 저격한 날이다. 한국외교고문관이라는 직함을 갖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고종을 위협하고 협박하며 밥을 주지 않기도 했던 스티븐스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면서 신문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일본의 보호 정책을 고마워하고 있으며 그러한 정책은 한국에 유익하다고 말하였다.

노동 이민으로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까지 흘러오게 된 장인환 의사는 이 말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를 저격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장인환 의사는 나중에 진술하기를 스티븐스가 살아 돌아가면 한국은 희망이 없으며 내 나라가 망하는데 내가 살면 무엇 하겠냐고 하였다. 그리고는 감옥에서 백인들의 모진 고문을 견디며 10년 넘게 지내셨다.

그러한 고문으로 나중에 골병이 들었지만 창문도 없고 화장실이나 샤워실도 없는 토굴 같은 감옥에서 초연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오히려 동포들에게 미안해하였다.

스티븐스 저격은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의 의거보다 먼저 일어났다. 그러니 장인환 의사는 애국지사 1호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점이 아쉬운데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 때문에 한국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쳐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관심이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한 시간을 할애하여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양인이 받았던 수모와 멸시, 감히 동양인이 백인을 죽였다는 점 때문에 감옥에서 받은 고문들, 노동일에 힘들면서도 밤이면 교회로 나와 한국에 관한 신문을 읽고 공부하던 장인환 의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이들은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그 눈빛에서 같이 분노하고 아파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나는 학생들이 맞춤법이나 문법보다 나의 뿌리, 우리의 뿌리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얼레에 이어져 창공을 자유롭게 나는 연이 아름답지 줄이 끊어져 전깃줄에 걸려 있는 연은 바람에 찢겨 흉측할 뿐이다. 아이들이 우리의 뿌리, 역사를 알고 그 뿌리에서 뻗어 나와 얼레에 이어진 연처럼 창공을 자유롭게 날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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